고문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부산영화제에 관한 마지막 포스팅을 할까 한다.영화제가 종료된지도 몇 일이 넘었는데 여전히 쓰고 있는 걸 보면,내 게으름 역시 알아줘야겠다..
10월 15일 16시 30분에 본 영화 <고문은 멈추지 않는다.(영어 제목은 Soul kicking) > 다.무슨 정치적 색채를 갖춘 영화같은 제목이지만,정치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처음 이 영화에 관한 부산영화제 소개책자의 짧은 글을 보면서,난 이 영화가 만만치않게 지루하고 굉장히 보기 힘들 거라는 직감을 가졌었다.그래서 영화제 기행이 처음인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에게,이번에야말로 박카스가 필요할 것이며 박카스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잠을 참을 수 없다면 그냥 잠을 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해두었었다.
그리고 내 예언은 완전히 적중되고 말았다.그 일행이 진짜 잠을 잔 것이다.soul kicking이라는 원제를 <고문은 멈추지 않는다>로 번안한 것도 일종의 센스이거나,아님 번안자 자신의 영화감상 느낌일지도 몰랐다.어쩌면 원래의 그리스어 제목의 번역일런지도 모르지만.사실 고전적인 고문 방법 중 한 가지가 바로 잠 안 재우기 고문이 아닌가.
그런데,정말로 이 영화는 거의 관객들을 고문한다.역시나 한 남자의 일상을 '극렬하게 추적'하기 때문이다.그래도 14시에 보았던 <쿠브라도르>는 약간의 사회적 함의와 약간의 유머러스함
그리고 인간적 향기들을 내포한 장면들을 갖추고 있었다.그것이 영화의 긴장에 약간의 쉴 틈을
주어 잠깐 잠깐의 호흡을 가능하게 했었다.그러나 이 영화 <고문..>은 거의 고의적으로 관객들을 고문하다시피 한다.이해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과격하게 밀어부친다.물론 문제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아마 당연히 개봉되지 않을 것이기에 스포일러를 좀 깔아도 될 듯 하다.줄거리로 들어 간다.이 영화의 주인공인 타키스는 평범하고 착하고 왜소한 중년의 가장이다.그는 선량함이 담긴 커다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인형공장에서 인형을 만들며 살아가는 노동자이다.그러나 그의 일상은 끔찍한 악몽의 연속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그의 아내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며 술에 쩔어 사는 알콜중독자에다가 끊임없이 타키스에게 욕설과 불평을 늘어놓고,사랑하는 딸은 도대체 어디에 맡겨놓았는지 얼굴 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다.직장동료들은 험악하고 상스런 욕설을 하루 종일 씨부렁거리며 서로 으르렁대기나 하고,사장은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태도로 그를 대하며 착취한다.어쩌다 돈을 빌린 후 갚지를 못 해서 사채업자들이 그를 때리고 고문하며,여동생은 정신병자인데 그녀를 데리고 사는 타키스의 친구와 친구의 부인(!)은 여동생 소유의 집에 얹혀 살면서도 여동생을 데려가라고 타키스를 윽박지른다.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어떤 특정한 순서도 없이,그리고 무엇 보다 꾸준히 계속 보여준다.희망이라고는 조금치도 없으며 우울함과 고통의 연속이다.더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영화의 대사들이다.정말 ( 다시 말해 거짓말이 아니라) 영화 대사의 79%이상이 욕이다.이렇게 많은 욕설들이 난무하는 영화는 처음 보았다.욕설이 난무한다를 넘어서 거의 공간을 기어다니고 뛰어다닌다.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타키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다.타키스에게 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그것도 같은 욕설을 두번씩 세번씩 연속해서 퍼부어대서 ,그리스어 욕설 몇 마디를 거의 외울 수 있는 지경이 된다.남녀를 가리지도 않는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 역시,차마 입에 옮기기도 어려울 욕설들을 지치지도 않고 퍼부어댄다.타키스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서로를 향해서도 그들은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비난하다.얼굴엔 서로를 향한 비천한 혐오감이 가득하고,증오와 멸시가 스크린으로부터 관객들을 향하여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이 영화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나라에서 나온 영화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특히 0ucking이라는 뜻을 가진 것 같은 '말라카'라는 욕을 오백번쯤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 되자 ,관객들 중 몇명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극장을 나가버리기 시작한다.그래도 고문은 멈추지 않는다..
작용엔 항상 반작용이 있어야 한다.공을 벽에 대고 던지면 튀어나와야 하듯이 말이다.물론 강한 힘으로 눌러버리면 반작용 조차 없어진다.망치로 때린 못은 벽을 파고 들어가 꼼짝도 하지 못한다.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누군가가 액션을 취하면 리액션이 있어야 한다.그래야 보는 사람도 행동하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다.어떤 작용에 대해 반작용이 없으면 그냥 답답해진다.짝사랑 처럼 말이다.짝사랑도 짝사랑 상대방이 어떤 거부 의사라도 나타내면 상황이 분명해지지만,그 상대방이 무반응으로만 일관한다면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갑갑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한 때 나는 그런 상황을 '존재의 블랙홀'이라 불렀었다.
오늘의 주인공 타키스야말로 무반응형 인간이었다.그는 그야말로 영혼을 고문당하지만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기대할 만한 반응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그는 그저 커다란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참고만 있다.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답답해진 아내가 욕설을 퍼붓는 와중에 '그렇게 부처 같은 꼬락서니로 앉아있지 말라'고 핀잔을 줄 정도로 말이다.겨우 그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당할 때 뿐이다.
바로 이 무반응이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작용엔 반작용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효과를 가져온다.타키스와 함께 우리 자신이 고문 당하는 위치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다.그것도 주인공 타키스를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즉 관객을 영화를 쳐다보기만 하는 타자 내지 방관자의 입장으로 내버려두지 않고,타키스의 인생 자체를 ,즉 그의 인생의 고통을,또한 우리 인생의 왜소함과 짜증 섞인 고통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만들어버린다.
'고통'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이렇게까지 우회적이면서도 신통한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제서야 깐느영화제가 이 영화를 주목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문은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영원히 계속될 것이며,우리 영혼은 쉼없이 발에 채여 나동그라지게 될 것이라는 암울하고 더러운 메세지를 이 영화는 전달하는 것이다..오 말라카..
결국 타키스는 자신의 고용주를 살해한다.그러나 그 때에도 여전히 그의 얼굴에 나타난 무표정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졌다.( 말라카란 소리도 들렸다) 이 영화의 대사 ( 물론 욕설이겠지 ) 는 배우들과의 공동작업이라는 자막이 보였다.이 배우들,영화 끝내고 무지무지 사이가 나빠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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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산에서의 마지막 영화는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일본 영화 <스윙걸스>였다.아카데미에 출품하는 일본대표 영화라는데,참 귀엽고 착했다.몇 달 내로 국내에 상영될 것 같아서 언급을 회피하기로 한다.부산의 야외상영장은 언제나 멋있다.가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아도,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요트들의 길쭉길쭉한 그림자들의 선을 보아도,그것 역시 영화다..부산의 가을은 영화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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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불고기를 먹으며 지루한 영화,졸리는 영화에 관해 얘기했다.언제나 그렇듯 백가쟁명이다.나는 1989년에 로카르노 영화제 (맞나?) 에서 상을 받았던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대해 주절거렸다.극장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3분의 1이 화를 내며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일어서버렸던 영화였다.
그런데 그 영화야말로 일상에 대한 극렬한 탐구를 감행하는 영화였다.<고문은 멈추지 않는다>의 욕설은 <달마,,>에서는 빛과 물과 불과 산사였었다.아주 세월이 흘러서야,난 그 영화의 진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그것이야말로 일종의 '교신'의 성공이었다.영화와 나와의 교신,영화 속 욕설과 나와의 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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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가 내년에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면,그 역시 교신이다.집단 교신,집단 도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