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와 꽃씨
조금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이 곳에 거의 들르지 않다가 들렀다.원래 그런 것 같다.복잡한 일들은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언제나 나쁜 일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심란한 와중에도 좋은 일이 꼭 생겨나는데,우린 그런 걸 잘 못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그런 것이 인생의 진행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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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나를 돌이켜보며,내 삶에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온다.복잡스런 고려나 간단치 않은 계산마저 전부 다 제외해버린다면 더욱 더 그렇게 된다.
나는 그저 '편안함'을 원한다.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평화'다.
'평화'와 '편안함',어딘지 굉장히 유사할 것 같은 이 단어들은 실은 대단히 감각적이다.이 두 단어는
각 개인의 감각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의 파장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내 감각'에 의해서 그 단어들을 느낄
뿐이다.내가 이 단어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순간 수많은 '평화'와 '편안함'이 곳곳에서 깨어나고 말은 수천 수백개의 스펙트럼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의 평화는 세계전체의 평화를 담보로 할 것이며,또 다른 사람들의 평화는 무지막지한 자본가들이나 불량경찰국가 미국의
퇴조를 전제로 할 것이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겐 자기 연인이나 가족들의 무사함이나 행복함이 가장 우선일 것이며 또 다른 어떤 사람들에겐 자기
내면의 유려한 고요함이 없이는 아무 것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평화 속엔 쟁취와 전투가 포함될 것이며,또 다른 편의
사람들에겐 모든 쟁취와 전투가 죄다 무의미할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일곱 개인지는
불분명하지만,그들이 쏘았다는 것은 미사일이다.살상용 무기다.미국은 그 미사일에 '대포동'이란 이름을 붙였다.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참으로 적절한
명명이다.미사일이야말로 왕대포니까..
북한은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단발성 불꽃놀이를 감행했다.물론 미국 역시 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얻어냈다.북한은 이벤트 만들기에 대한 개념이 있다.생각보단 예술적인 사람들이다.(블랙 코미디의 달인들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그들의 자주권을 역설하든,우리가 동북아 전체 정세를 고려하든,이면에 6자회담과 북미 양자협상에 관한 전망이
숨어있든,가장 고통받는 것은 부시도 김정일도 고미즈미도 아닌 남북한의 인민들이다.
진보진영이 북한문제에 대해서 자기잣대로 이루어진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또한 박정희가 민족을 위한 '핵'을 개발하려다가 미국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설을 좋아하는
사람들,'대포동'에 대해선 어떤 잣대를 적용할 것인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미사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 보이지 않는가? 그 대포동
말이다.그러나 북한이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기계를 실험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는 말자.그 대포동 말이다.
북한 발
불꽃놀이 소식을 들으면서 뜬금없이 김성도 선생님의 동화 '대포와 꽃씨'가 생각났다.
이 동화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서로 사이가 나쁜
나라인 남쪽나라와 북쪽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어느 날 ,남쪽나라 궁전과 시청들의 앞마당에 폭탄이 투하된다.북쪽나라에서 쏜 것이 틀림없지만
불발탄인지 터지지는 않는다.포탄의 겉엔 포탄 속에 꽃의 뿌리가 들어있다고 쓰여있다.검사 결과,사실이다..
남쪽나라는 고민에
빠진다.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의견들만 분분한 가운데 아까부터 조용히 앉아만 있던 신하 한 사람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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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옛부터 이는 이로 갚고 눈은 눈으로 갚으란 말이 있쟎습니까?
-그래서?
-꽃은 꽃으로 갚아야 합니다.
-꽃으로
갚다니?
-북쪽나라에서는 꽃의 뿌리를 포탄으로 썼으니,우리는 꽃씨를 포탄으로 쓰는 게 좋겠습니다.
남쪽나라는 북쪽나라를 향하여
꽃씨포탄을 날린다.꽃씨의 숫자가 꽃뿌리의 숫자보다 낫다는 고려도 당연히 포함되었다.두 나라는 포탄에 날려온 씨와 뿌리로 꽃을 심고,서로에게 없는
꽃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종내에 가서는 평화가 찾아오는 걸로 얘기는 끝난다.
조금만 더 수다를 떨자면,두 나라의 특이한 꽃
품종은 다음과 같다.먼저 북쪽나라 꽃이다.
1,개미꽃; 꽃씨를 게으름뱅이에게 달여먹이면 게으름병이 당장 낫는다.
2.꿀벌꽃;
피었다 진 꽃잎을 삶으면 바로 꿀이 된다.벌꿀보다 더 달다.
3,나비꽃; 이 꽃의 꽃잎은 여느 꽃처럼 시들지 않는다.꽃잎 하나하나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
닌다.
4,무지개꽃; 줄기와 꽃잎들이 일곱 가지 빛깔로 되어 있다.남쪽나라에선 여자들 옷에 이
꽃무
늬를 놓는다.그래서 여자들의 얼굴은 언제나 무지개처럼 환하다고 한다.
5.노을꽃;꽃의 빛깔이 저녁노을의 빛깔이다.그래서 이 노을을 사랑하는
남쪽나라 사람들은
예
술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6.꿈꽃; 꿈을 꾸고 있는 아가들의 눈매를 닮은 꽃.그래서 남쪽나라 사람들은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높은 것을 꿈꾸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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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이 동화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북한의 대포동에 꽃씨나 꽃뿌리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도 안다.이런 식의 글이
현실에는 별반 소용이 없으며 욕이나 먹지 않음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언제나 비난은 달게 받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 포탄에
대한 환상 만큼은 버리지 않겠다.좋쟎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거의 발언하지 않았던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만년에 이렇게 말했다.
- 단순한 평화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전쟁이라는 그 해묵은 열정은 금욕적이고 치명적인 마력
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전쟁을 근절하려면 그것에 맞설 또다른 열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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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내 글을 오래 읽은 분들은 내가 조금은 수다스럽게 글을 계속 이어나가리라
짐작하실 것이다.그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이어지는 것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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