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I'd rather go blind..<왕의 남자>

폴사이먼 2006. 1. 28. 12:14

 

 요새는 정말 극장에 갈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실제로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한 탓인지 아님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그러는 것인지를 정확히 분석할 이유도 명분도 없지만 어쨌든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드디어.

 주말에 짬을 냈다.

 

 나와 아내는 극장 앞 매표구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무슨 영화를 볼 것인지를 고민했다.우선 <투사부일체>가 제외되었다.그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가 아무 이유도 없이 편안하게 웃고만 싶은 것이라는 아내에게,나는 급성 소화불량증이나 위경련으로 괴로와하는 남편을 보고 싶으냐고 협박했다.과거 나는 <낭만자객>과 <해피 에로크리스마스>를 보고 그 날 밤 심하게 체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투사부일체는 바로 아웃!

 

 그러나 아내의 반격이 시작이 되었다.<싸움의 기술>을 보자는 내게,아내는 '백윤식'은 좋지만 영화 포스터가 너무 칙칙해보이는 것 아니냐고 말도 안 되는 딴지를 걸었다.내가 투사부일체를 거부한 것에 대한 반작용임에 틀림없었다.뭐 어쩔 수 없다.다른 영화를 찾아볼 수 밖에..

 

 <킹콩>은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고,<야수>나 <태풍>은 보나마나 별 거 없을 것이라는 것에,우리 둘 다 한꺼번에 동의했다.결국 우리가 고른 영화는 <나니아연대기>와 <왕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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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사가 제작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마자,난 이 영화가 속편을 겨냥한 아동용 영화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졌다.내 의혹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그런대로 재미 있다.지나치게 기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서 공연한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내가 <싸움의 기술>의 포스터에 대해 가졌던 심정과 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주인공 마녀 틸다 스윈튼의 카리스마가 모든 것을 잊게 했다.그 어떤 영화에 나와서도,이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배우는 흔치 않다....

 

                         

 

 

 틸다 스윈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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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음으로 본 영화는 <왕의 남자>다.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은 관객으로 가득 차 있다.간간이 터지는 관객들의 웃음소리 속엔 나이든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젊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들과 한데 어울려 섞여 있다.관객층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과연 최고의 흥행영화답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의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영화가 ,이상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관객은 그 영화의 수많은 좋은 요소들 중 어떤 한 요소에 집중하게 된다.어떤 이는 스타파워에,어떤 이는 이야기의 완결성에,어떤 이는 영화 속에 나타는 정치적인 성향에,어떤 이는 의상과 세트에...

 

 그 요소 하나하나가 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를 갖추게 되면,그 영화는 성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진다.바로 이 영화 <왕의 남자>가 그렇다.

 

 어떤 팬들은 공길 이준기의 양성적 매력에 매혹된다.또 어떤 사람은 장생이라는 거칠 것 없는 광대의 선 굵은 인생과 절대권력을 향한 배짱에 공감한다.또 어떤 분은 이 영화의 아련한 로맨스에 감동하고,또 어떤 이는 캐릭터 간의 긴장과 암투 자체를 숨가쁘게 즐긴다.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무의식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지도 모르겠다..

 

 <왕의 남자>는 영화의 구성요소들을 모조리 수준급 이상으로 장착한 웰메이드 중의 웰메이드 영화다.성공하는 것 ,당연하다...

 

 나는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낭만적인 사랑 영화로 읽었다.그리고 웰메이드이기는 하지만,걸작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하는 근거없는 생각을 가졌다.어쩌면 난 걸작이라는 단어를 너무 별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나 소나 입만 열면 왕 얘긴데,좀 노는 게 뭐가 대수야..

     왕이 그렇게 허약할 줄 알았으면 놀려먹지도 않았어.

 

 ㄱ.광대

 

이 영화의 주인공의 직업은 광대다.영화의 다른 축인 왕,연산군 마저 가끔씩은 정치놀음의 한 광대처럼 보이기도 하고,연산 자체가 광대놀음을 하는 장면도 있다.

 

 광대란 뭐하는 사람인가?

 

 광대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웃기는 존재이다.관객의 웃음으로부터 직접적인 소득을 챙기고 그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우리 주위에도 많은 광대들이 널려 있다.예를 들어 텔레비젼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광대들은 우리를 숱하게 웃긴다.그들은 남다른 순발력과 철저한 준비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광대에도 격이 있다.관객들을 웃길 수 있는 광대들은 많지만,그 웃음에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광대는 흔치 않다.웃음이 여운을 남기려면,웃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 속 무언가를 건드려야 한다.예를 들어 세계 제일의 삐에로 챨리 채플린의 몸동작으로부터는 웃음과 함께 슬픔이 묻어 나온다.그것은 매우 보편적인 슬픔이며,이 슬픔이 그를 바라보는 눈매들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것이다.그의 슬픈 동작들은 사람들의 마음 어딘가를 자극하는 동시에,우리가 속해 있는 체제 자체를 풍자한다.그래서 그의 웃음이 오래 가는 것이다.

 

 이 영화 속 광대들 역시 모조리 슬픈 광대들이고,운명적인 광대들이다.

 감우성이 연기하는 장생은,거침없이 권력을 비판하고 후려까지만 (이것만으로 지금의 관객들은 시원해진다.최근의 한국사회는 '아무도 믿을 놈이 없는'사회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황우석을 보라) ,사랑 앞에 무너진다.

 

 그의 풍자는 대담하고 직선적이지만,냉소적이지는 않다.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유들유들하게 요리하는 풍자가 아니라,직접 상황에 개입하여 자신을 내던진다.목숨을 담보하면서 말이다.여기에 감동받지 않을 수 있는 관객은 별로 없다.관객 개인이 유지하는 작고 파편적인 일상에 비해,장생의 짧고 굵은 예술적 스파크는 큰 파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생에겐 정치적 각성이나 계급의식 따위는 없다.그가 왕과 중신들의 전횡과 파행을 비웃을 때,그의 머릿속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식의 혁명적인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오로지 '갖고놀려'한다. 처선이 결정적인 궁중극의 시나리오를 건넬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렇게 하면 도대체 누가 웃는 거요..

 

 그는 전체적인 판을 뒤엎는 대신,최후의 공연과 마지막 발언의 길을 택하고 자신의 생명으로 그 댓가를 치른다.역설적으로 이것은 관객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장생이 자신의 몫을 '사랑하는 남자'의 틀에 한정시키기 때문이다.장생처럼 대담한 사람이 온전히 정치적이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그래서 그는 김처선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다.

 

 또 장생에겐 자신이 풍자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다.채플린과의 차이이다.그래서 그의 칼날은 온전히 그 자신을 향한다.수많은 영화와 연극 속에서 권력자를 조롱하는 광대들은 참 많다.예를 들어 리어왕의 광대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자신의 왕을 쉴 새 없이 조롱한다.그러나 리어왕이 죽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바로 그의 광대다.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식으로 각색한 구로자와 아끼라의 <란>에 나오는 광대는 주군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한다.

 

 장생에겐 바로 그것이 없다.그래서 장생은 마치 광야의 선지자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실제로는 외로운 목소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반면 공길은 그의 풍자대상인 연산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그가 연산 개인의 내면적 고통을 눈치채고 모성적으로 이해하고 품기 때문이다.그 순간 공길 또한 더 이상 풍자하는 광대가 아니다.그는 멜로드라마를 스스로 연출하는 모놀로그 배우가 된다.그 역시 사랑하는 인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광대들은 전형적인 광대들이 아니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ㄴ. 동성애

 

이 대사는 전형적인 사랑의 정의에 관한 대사다.서로의 존재 위치를 확인하는 것,상대방이 어디에 있다,라는 것을 아는 것.어쩌면 이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사랑은 동성간의 사랑이다.동성애다.그러나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분명히'아니다.극 중 공길이 남사당패에서 남창으로 일하는 장면이나,연산군이 공길에게 기습적으로 뽀뽀하는 장면이 들어있긴 하지만,그렇다고 <왕의 남자>가 동성애를 '긍정적으로'또는 주된 테마로 그리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인 장생은 역시 남자인 공길을 '분명히'사랑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측면이 배제된 정신적 사랑이며 보호본능에 가까운 사랑이다.그는 공길과 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면서도 공길의 벗은 몸을 이불로 덮어주는 (추울까봐 ?) 배려 이상의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남자인 연산 역시 남자인 공길을 사랑하지만 그는 그 사랑을 '비역질'이라고 비난하는 장생에게 분노의 화살을 날린다.그는 자신의 사랑을 완전히 인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두 남자의 사랑의 대상인 공길은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로 동성에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들의 본능적인 혐오감을 봄 눈 녹이듯 녹여버린다.

 

 관객에게 공길은 '동성애'의 대상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대상이다.가령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홍석천이 이준기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의 방송경력은 어떻게 변해져 있었을까?

 

 <왕의 남자>의 감독인 이준익은 '동성애'라는 민감한 사항을 슬쩍 피하여 그저 소품으로만 갖다 쓴다.어쩔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따라서 우리 사회의 동성애자들의 앞날이 아직도 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역으로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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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광대'나 '동성애' 같은 범주의 문제로 보지는 않았다.그것은 어쩌면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물론 이 영화를 노무현과 유시민의 얼굴로 패러디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시각보다는 백배천배 낫지만 말이다.(사람은 역시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 관한 영화','사랑의 비극'에 관한 영화로 보았다.생각해보자.당신은 사랑의 유효기간이 얼마 쯤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그 대상을 온전한 눈길로 바라볼 수 없다.상대방을 냉철하게 분석한다거나 그 또는 그녀의 이면을 차분하게 궁리하고 자신과 얼마나 어울릴 수 있겠는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만한 여유 따위는 없어진다.사랑은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불가해한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고,그 향기와 설레임은 정상적인 판단기능에 혼란 또한 불러 일으킨다.

 

 즉 눈이 먼다.사랑에 눈 먼 자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다.그는 끈질기게 앞으로만 전진하고 어떤 위해가 다가올지라도  그것을 자기 몫으로 감내하고 극복해낸다.

 

 그러나 어느 순간,사랑의 정열이 야맹증을 일으키는 유효기간이 지난 어느 때에,그는 자신의 실체를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자신의 모습에 대한 그 어떤 일말의 회의도 이젠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을 한없이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혹은 그 반대방향으로도 작용하고 ) 사랑은 이제 보다 일상적인 모습으로 변하며 신화적이었던 외양은 가차 없이 벗겨져 버린다.

 

   (녹수가 공길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 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반면 <왕의 남자>에서의 사랑하는 사람들은,이러한 사랑의 유효기간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버린다.그들은 여전히 눈이 먼 채로 ,본원적인 사랑의 모습을 유지한다.그리고 최종적인 죽음으로써 이 사랑의 유효기간을 영원까지 연장시킨다.이 비일상적인 사랑이 일상적인 개인들을 (우리 관객들을)

자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우리가 그런 사랑에 매료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하고 말이다.

 

 그럼 그들의 사랑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1.장생

 

 

 

- 어느 잡놈이 그 놈 마음 훔쳐가는 걸 못 보고,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 보고..

 

-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 신명에 눈 멀고..

 

장생이야말로 '눈 먼 사랑'의 대표주자다.모든 면에 단호하고 결단력있게 행동하는 그가,공길에게만은 그렇지 못했다.그는 강제로라도 공길을 궁궐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어야 옳았다.종살이와 남사당패에서 공길을 탈출시켰던 그는,궁궐에서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랑의 위기 때문이었다.그는 공길과 연산 사이를 의심한다.

 

 그는 공길에게 '왕은 미쳤다'라고 말한다.공길은 '아니'라고 대답한다.그러자 장생은 '남들은 다 그렇게 보는데,왜 넌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말한다.그러나 공길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그 때 장생은 눈 먼 사랑을 하는 사람의 감각으로 공길 역시 눈이 멀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것은 장생에게 있어,그가 평소에 알아왔던 사랑하는 공길의 이미지가 깨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장생은 사랑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눈이 멀어버리는'것이 낫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그것은 또한 그가 공길을 사랑하는 애초부터의 방식이기도 하다.그는 끊임없이 공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내던져 왔다.그는 공길이라는 내면적이고 몽상적이며 유약한 인물을,현실로부터 보호하는 큼지막한 울타리였다.

 

 장생은 그들을 둘러싼 위기의 맥락을 파악하고 있으므로,자신의 두 눈을 바쳐 공길을 보호하기로 작정한다.따라서 장생이 맹인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랑의 상실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는 것.

 둘째는 공길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한 방법으로서.

 

적어도 공길은 장생에게 ,존재의 절반이다.따라서 그가 I'd rather go blind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그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진정한 맹인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장생은 공길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그의 사랑이 눈 먼 사랑이기 때문이다.나와 아내는 마지막 순간의 외줄타기에서 장생이 과연 본질적 자유를 획득했는가에 대해서 한참이나 말싸움을 벌였다.박찬욱이라면 장생을 섬뜩한 스토커로 변형시켰을런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우린동의했다.어쩌면 장생의 그 끔찍한 사랑은 삶의 일상적인 측면들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그가 극한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운명적 사랑은 눈 먼 사랑인 것이다..

 

2.연산

 

 

 

- 놀자!

 

연산군은 광대 장생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다.그의 정신은 뒤죽박죽이며 혼란스럽다.정진영은 연산의 이런 내면을 정교하게 표현해낸다.근래에 본 영화 중에 나왔던 모든 배우들 중,최고의 연기이다.그런 연산은 과연 누구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연산은 본질적인 결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그는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어머니의 피살은 그에게 깊은 정신적인 상흔을 남겼다.

 

 게다가 그의 피는 '놀고'싶어 한다.그는 연희와 주색을 좋아하며,광대들 사이로 끼어들어 광대짓을 할 줄도 아는 임금이다.그러나 아버지와 중신들의 율법은 그런 그를 옭아맨다.그는 처선과 더불어 음모를 꾸며 상황을 타개해나가려 하지만 ,그의 앞엔 공길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난다.

 

 공길은 연산의 고통을 저절로 공감하고 그를 정서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인형놀이와 같은 내밀한 방법을 통해 그의 고통을 치유할 줄도 안다.연산과 공길 간의 대면극은 일종의 싸이코드라마이다.연산은 가상의 연극공간에서 작고 눈물겨운 해방감을 맛본다.장녹수 역시 연산의 고통을 직선적으로 파고 들지만,공길에겐 녹수가 가지지 못한 모성성이 있다.

 

 연산은 결정적인 순간에 공길에게 눈이 멀어버리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재연극'을 보고 자제심을 잃어버린다.

 

 처선은 광대 공길이 방아쇠가 되어 연산을 눈 멀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아마 예측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연산처럼 ,자기 정신에 결정적인 결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타인을 사랑하기가 몹시 어렵다.그의 눈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상처를 향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속에서도 자신의 고통 만을 발견한다.자폐적인 인간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그의 정치적 패배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는 결정적인 패배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감성을 느끼며 웃을 수 있다.쿠데타 군이 몰려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허허롭게 웃으며 장생과 공길의 줄타기 놀음을 응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마 그는 반 허공에 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면서도,그 허공에 같이 떠 있는 자기 자신을 느꼈을 것이고,그 비극적인 자기연민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고 죽는다.

 

 

 

 

 

3.공길

 

 

 

 - 가지마!

 

어쩌면 공길은,정확하게 정체의 윤곽을 그리기가 어려운 인물일런지도 모른다.그는 대단히 순종적이며 무반응에 가까운 인간이다.아니,다른 사람들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인간형인지도 모른다.그는 외부의 반응들을 흡수하고 포용한다.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놓는 일은 거의 없으며,자신의 의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곤 그림자놀이나 광대놀음 같은 간접적인 것들 뿐이다.

 

 그의 눈물은 의도가 배제된 순수한 슬픔으로 비춰지며,그의 웃음은 가식이 배제된 천진한 미소이다.더렵히지지 않은 일종의 원시적인 질박함이 그의 존재로부터 솔솔솔 풍겨나온다.

 

 그의 말들 또한 광대극에서의 대사나 애드립을 제외하면,무척이나 짧은 단문들 밖에 없다.

 

 양반에게 남창으로 팔려가는 것을 제지하는 장생에겐 '놔!'

 궁을 떠나려는 장생에겐 '가지 마!'

 연산에겐 '살려 주시옵소서'

 

 이런 식이다.그는 대단히 모호한 사람인 것으로 느껴지는데,성적인 정체성 또한 그렇다.그것은 원래 공길이 그런 사람이거나,영화감독의 캐릭터 만들기가 불완전했기 때문일 것이다.일단 후자의 가능성을 젖혀 놓자.

 

 과연 공길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는 누구의 남자였을까? 그가 왕의 남자라면,광대판의 왕인 장생의 남자였을까,아님 현실의 제왕인 연산의 남자였을까..

 

 해답은 이렇다.그는 왕의 남자이다.다시 말해서 그는 모든 왕의 남자이다.그는 호색한 양반의 남자도 될 수 있고 궁중제왕의 남자가 될 수도 있다.정조관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공길 자신이 그렇게 커 왔기 때문이다.그는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데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공길의 매력은 생래적인 것이고 그는 무표정한 희생을 통해 거의 불교적이라 할 만큼의 보시를 베푼다.

 

 그는 이 놈 저 놈을 가리지 않으며 선천적인 사랑의 맹인에 가깝다.그가 가장 공감했던 사람은 장생이 아니라 연산일 것이다.공길은 연산의 정신적인 결손에 예민하게 반응했으며,그 예민한 반응이 이야기의 파국을 몰고 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나는 공길을 세상사에 무관심한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로 그렸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했었는데,만약 그랬으면 이야기 자체가 진행 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길은,광대극 중 분장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을 때나 탈을 쓰고 연기할 때 더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느껴졌는데,그것은 역으로 현실 속의 그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모호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증거로 내겐 받아들여졌다.

 

 

                                -                                                      -

 

 이 세 사람의 눈 먼 자들이 벌이는 사랑은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그러나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제각각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그것은 다들 묘한 정당성을 지닌다.선악의 경계란 없다.철저하게 악한 캐릭터도 없다.세 사람을 해하려는 조정 중신들 역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듯 그려진다.연산은 정상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소위 '나쁜 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특이한 사극이다.

 

 또다른 중요한 인물들인 김처선과 장녹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4.김처선

 

- 큰 사냥을 하기 위해서 발소리를 죽이는 법이옵니다.

 

 그리고

 

 - 공길이를 버려!

 

 김처선은 현실 세계에서의 '왕의 남자'이다.그는 연산의 정치적인 조력자이며,연산의 궁극적인 권력쟁취를 꾀하는 음모가이다.그 역시 연산의 상처를 어느 정도 궤뚫고 있으며,그러한 왕의 심리를 이용하여 정국을 역전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는 왕이 공길에게 빠져드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그런 왕을 되돌리려 애쓰다 실패한다.이로써 처선은 어설픈 음모가이자,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는 심리학자의 위치로 떨어져 버린다.

 

 그것은 처선이 너무나 '현실세계'에 깊이 몸 담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정치적인 인물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그 '현실'의 눈이 연산을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따라서 그의 현실적 자살은 당연한 귀결이 된다.

 

 전체적으로,그의 음모는 준비성이 결여되어 있고 즉흥적이며 좀 어설퍼 보인다.노련한 배우 장항선의 연기가 그런 삐걱꺼림을 어느 정도 커버한다.

 

 결국 그는 '방울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나이였던 것이다.

 

5.녹수

 

 

- 미친 놈!

 

녹수 역시 처선 처럼 현실적이다.그리고 연산을 잘 알고 있다.그녀는 '젖 먹자 우리 애기' 란 말로 대표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왕의 모성결함을 메우며,그 결과 권력으로 군림한다.따라서 공길이라는 새로운 어머니가 떠올랐을 때,그녀가 발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공길의 옷을 벗겨서 그가 사실은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것은 현실논리의 귀결이다.

 

 그녀가 연산에게 반말을 던지는 것은 그녀가 그의 어머니의 대역이기 때문이다.결국 연산은 녹수의 치맛속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이 영화 속 장녹수는 ,요부로만 묘사되었던 장녹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의 해석이다.

 

 강성연의 건조한 금속성 목소리는 매우 탁월했다.과거 우리 영화의 녹수들 처럼 간드러지는 목소리였더라면,그것은 <왕의 남자>라는 영화의 결정적인 옥의 티가 되었을 것이다.

 

 다소 여성적인 매력이 떨어지는 강성연이 캐스팅되었던 것은 매우 적절하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강성연에 대한 실례라고 여기지 않는다)

 

 

                      -                                                 -

 

 ㄹ. 기타등등..

 

 그 밖에도 할 말이 많겠지만,여기서 그치고자 한다.체력이 떨어졌고 설날이니 집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긴 글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새해 복많이 받으시라...

 

 몇 가지 잔소리를 덧붙이고 글을 끝내고자 한다.

 

 a. 마지막 장면

 

     연산과 녹수의 표정을 꼭 보아야 한다.삶과 죽음의 경계에서,그것을 초월한 듯한 두 사람의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다.정진영은 그렇다 쳐도 강성연에게서 그런 눈빛이 나올 줄은 몰랐

      다.

 

      이 표현주의적 엔딩으로 영화가 끝났을 줄 알았는데,다시 산길을 걸어가는 광대 행렬이 나온

      다..ㅎㅎㅎ

 

 b. 육갑 ,칠득,팔복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삐에로들은 바로 이들이다...

 

 c. 패왕별희

 

         나는 이 영화 속의 어느 장면들이 '패왕별희'의 모방이라는 몇 분들의 말씀에 결단코 반대

         한다.

 

 d. 명문대 출신 연예인

 

        이 글의 서두에 나왔던 <나니아 연대기>의 틸다 스윈튼은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영국

        왕립극단을 거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소위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다. 감우성과 정진영

         역시 그 말 많은 '서울대 출신'이다. 명문대 출신 좋다.뭐라 안 한다.그러나 이 정도는 해

         줘야 자기 학교의 네임 밸류에 덜 부끄럽지 않겠는가? (꼭 다른 명문대 출신의 다른 사람들

         을 겨냥한 말은 아니다)

 

 e. 끝으로 음악을 덧붙인다.내가 블로깅을 하면서 처음으로 '퍼 온'음악이다.좋은 음악을 퍼 가게

     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할까 한다..

 

      노래 제목은 I'd rather go blind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느니 차라리 눈이 멀어버리

       는 것이 낫겠다는 내용이다.여덟가지 버젼이다.세번째로 나오는 Hennie Dolsma 의 것은

      에스페로인가 하는 자동차 광고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노래였는데,소싯적 무도장(?)에서 노

       닐 때에 ,블루스 음악으로 참 많이 각광받았었다.

 

      그러나 난 Long John Baldry의 버젼을 가장 좋아한다.,....

 

http://blog.naver.com/hosann/70001140913

  I'd Rather Go Blind

 

 

Chicken Shack

 

    ※ 크리스틴 맥비가 플리트우드 맥에 가담하기전에 활동하던

    그룹인 Chicken Shack 의 곡은 존 맥비를 만나 결혼하기전의

    이름인 Christine Anne Perfect (크리스틴 맥비) 의 목소리다.

 

    I'd Rather Go Blind...블루스 색채가 너무 강해 언듯 들으면 비슷하게

    들리지만 워낙 멋진곡에 아무나 흉내 낼수 있는곡이 아니므로

    잘~들어보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함을 느낄수있다.

    8인 8색의 느낌으로 명곡을 감상해 보자.

 

Etta James
40년 동안 일관되게 블루스를 부르는 뮤지션이다...
 
 

Hennie Dolsma

 

- I'd Rather Go Blind -

 

Something told me it was over,
When I saw you and her talkin.


Something deep down in my soul said, "Cry, girl."
When I saw you and that girl walkin around.

Whoo, I would rather, I would rather go blind, boy,
Than to see you walk away from me, child, no.

Whoo, so you see, I love you so much,
That I don't wanna watch you leave me, baby.
Most of all, I just don't, I just don't wanna be free, no.

Whoo, whoo, I was just, I was just, I was just,
Sittin here thinkin, of your kiss

and your warm embrace, yeah.


When the reflection in the glass that I held

to my lips now, baby,
Revealed the tears that was on my face, yeah.

Whoo, and baby, baby, I'd rather, I'd rather be blind, boy,
Than to see you walk away, see you walk away

from me, yeah.

 

Whoo, baby, baby, baby, I'd rather be blind...

 

당신이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모든게 끝났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당신과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슬픈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걸 보느니
차라리..앞을 보지 못한다면 좋겠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아시잖아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난 자유로워지고 싶지는 않아요.

난 그저..그저..여기에 앉아
당신의 입맞춤과 따스한 포옹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 입술이 닿은 유리컵에 반사되어
내 얼굴에 흘러 내리는 눈물이 보이네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걸 보느니 차라리
앞을 보지 못한다면 좋겠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아시잖아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무엇보다도 난
자유로워지고 싶지는 않아요.

그대여..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앞을 보지 못한다면 좋겠어요.

그대여..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앞을 보지 못한다면 좋겠어요.


 

 

 

Koko Taylor

 

난 그녀의 voodoo woman이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Oscar Benton

   

Long John Baldry

 


Ruby Turner

   

Rod Stewart


 출처 : http://blog.daum.net/lp3331 

 

끝으로 다시 한 번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