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정말로 두려운 것은..<남극일기>

폴사이먼 2005. 6. 22. 22:00

내가 남극일기를 본 때는 지난 5월이다.우연한 기회에 머나먼 p시에 가게 되었고,무료한 저녁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심야상영관을 마주친 것이었다.한참이나 볼 영화를 선택하려고 서성대다가,송강호의 사진이 떡 붙은 포스터를 발견하고는 이거다 싶어 <남극일기>를 선택했다.

 

관객은 별로 없었다.나는 뒷쪽 좌석의 중간 쯤에 홀로 앉았고 일곱 줄 쯤 앞에는 친구 사이들로 보이는 이십대 남녀 여남은 명이 홀짝홀짝 음료수를 마셔가며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예고편이 상영되는 내내 나는 다양한 헤어스타일의 실루엣으로 장식된 뒤통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는데,그것은 마치 그림자 인형놀이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고,<프린스 앤 프린세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그러면서도 난 내 몰지각한 취미를 스스로 비웃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1남극 그리고 송강호..

 

영화? 글쎄 그렇게까지 재미있거나 그렇게까지 걸작이진 않았다.영화에 그려지는 남극의 풍경 역시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진 않았다.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외국의 재난영화들을 너무 많이 보아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송강호의 모습이 날 미소짓게 했고,나는 그가 그의 또래 배우들 중 최고라는 평소의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아아,잠깐 우리 트집 잡지 말자.설경구도 있고 최민식도 있고 뭐 좋은 배우들 많이 있는 것 나도 안다.그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어떤 의미에서는 천박한 일이기까지 하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그들 모두,artist 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배우들이다.그러나 굳이 송강호를 꼽는 것은 그가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가 최고라는 내 말을 이제 와서 취소시키기엔 좀 그렇다.

 

사실 설경구는 가끔 <단적비연수> 같은 이상한 영화에 출연하고,최민식은 과감하게 내부 정서를 폭발시키는 특유의 연기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 않은가..

다른 배우들? 한석규는 이미 한물 갔는데 그것은 그가 블록버스터급 영화에만 출연하려 하기 때문이고,박중훈은 성형수술을 꼭 해야 하는데,그것은 그의 얼굴 자체가 너무 코믹하게 생긴 탓이며,그가 너무 코믹한 영화에만 발길을 돌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병헌이나 배용준,원빈은 한류열풍에 몸을 띄워 돈버느라 너무 열심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기 매우 어렵다..또 유승범이나 박해일,조승우는 그야말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선한 배우들이지만 아직 완성단계의 배우들이 아니지 않나..머,,그렇다..

 

2.남극 그리고 진짜 공포..

 

남극의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려는 탐험대가,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서,정복을 포기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대장 송강호의 개인적 욕망이 원인이 되어 무리한 탐험을 강행하다가 모두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비극을 그린 것이 이 영화 <남극일기>다.

 

한데,나는 이 영화를 '공포영화'로 읽었다.영화를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거나 ,식은 땀을 흘려서가 아니다.난 영화 보는 내내,죽음의 공포에 떠는 대원들을 바라보며,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사실 영화 역시 탐험대원들의 자연에 대한 투쟁을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런 것들 보다는 한계상황에 닥친 대원들의 인간적 반응들을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공포에 떨거나,서로에게 분노를 떠뜨리거나,대장에게 의지하거나 하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그런 그들 마음의 기저에는 강력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진짜 공포는 무엇일까?

 

죽음일까?

 

그래 ,죽음은 무섭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예정된 죽음에 대해,평소에는 침착하고 의연해하다가도,막상 죽음이 닥치면 두려워하고 떠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물론 종교에 의지하여 죽음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본 적도 많다.그러나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맞는 죽음은 통상적인 죽음과는 차이가 있다.그들은 자신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종교인들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가 모두 사라지지 않으며,다음 세계에서 부활하거나 형태를 바꾼다고 생각한다.그들에게 죽음은 완전한 '존재의 실종'이 아닌 것이다.

 

또한 어떤 대의 명분을 위해,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그들에게도 죽음은 완전한 사라짐이 아니다.그들에겐 그들이 수호해야 할 가치가 있으며,그로 인해 희생될 자신의 이름이 있다.그들의 죽음 역시 완전한 '사라짐'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공포는 어떤 '상실'에 있다.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잃는다는 것,특히 자신의 존재를 잃는다는 것 _예를 들어 죽음- 그것이 바로 진짜 공포다..

 

그렇담 남극일기의 주인공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명분'은 있다.특히 송강호에게 명분과 이유가 있다.그러나 이 명분은 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서히 차례로 사라져가면서 공포로 전화한다.자기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공포의 극한으로 몰고 간다.이미 사라짐이라는 공포를 극복한 송강호와,그 반대편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대원들 간엔 결국 유혈극이 벌어지고 그들은 글자 그대로 '실종'되게 된다.

 

나는 바로 이러한 '실종','사라짐'이 진짜 공포라고 생각하며 앞 쪽 관객들의 뒷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들과 나 사이엔 한 사람의 관객도 없었으므로 그들의 뒷통수는 내 시야에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머리들 중 하나가 이유없이 사라진다면,저 사람들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갑자기 머리를 돌렸을 때,옆자리에 그가 사라지고 없다면,그리고 뒤이어 또다른 누군가가 사라지고,그리고 뒤이어 또다른 누군가가 '실종'된다면,그리고 그 존재의 사라짐이 바로 자기자신에게도 불시에 들이닥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이것이야말로 '진짜 공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되었든 실종이 되었든,이런 종류의 공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작품은 아마 <블레어위치>일 것이다.블레어 위치의 주인공들은,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서,그 방법이나 이유 조차 알지 못한 상태로,'실종'(죽음) 되는데,난 내가 본 공포영화 중 블레어 위치 이상으로 공포를 느낀 영화가 없을 정도였다.

 

<남극일기>에서는 공포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제시된다.초자연적인 이유 역시 언뜻 언뜻 제시된다.크레바스에 빠져 고립된 대원에게 유령의 형상이 다가선달지,백 년 전 영국 탐험대의 경험과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달지,합리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영화는 이들의 실종원인을 ,그리고 공포의 원인을 자꾸만 송강호의 정신과 욕망에만 맞추려 한다.송강호의 무리한 '도달불능점'으로의 도달욕만을,그리고 그의 파괴된 정신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자 영화는 서서히 식상해진다.어디서 많이 봤던 구도이기 때문이다.반면 공포의 원인을 미궁에만 빠뜨린다고 해서 식상함을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송강호의 욕망이 제거된 상태에서 대원들의 실종이 진행되었다면 남극일기는 x-file류의 미스테리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게다가 배경은 남극이다.남극이란 거대자연이 기본적인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그들은 당연히 그것과도 싸워야 한다.자연 자체가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그러나 자연 자체와의 싸움이라는 프로젝트를 영화 속에서 달성하려면,엄청난 기술과 물량을 자연 자체에 투자하여 공포를 창조하여야 하므로,생각보다는 너무 커다란 작업이 되고 만다.또한 관객은 자연재해와 맞서 싸우는 영화를 많이 맛보아왔으므로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자연을 만드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감독 임필성은,공포의 원인을 인간 내부에 돌리게 되었고,송강호는 자연히 비극적 욕망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졌던 것이다.그래서 남극의 풍광은 그저 거대한 눈 벌판으로만 만들어진 것이고 말이다.감독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이런 것들이 탐험대원들의 실종을 관객들이 매우 의례적인 것으로 익숙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러분은 내게 이야기할 것이다.공포영화도 아닌데,왜 자꾸 공포 공포,공포 타령이냐고 말이다.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앞자리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뽐내고 있던 머리통들과,나의 근본적인 성향이 이 글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나는...겁쟁이인 것이다...

 

3.마무리로 사용될 몇 개의 문장들...

 

ㄱ.왜 사람들은 도달 '불능'점에 '도달'하려 하는 것일까? 그것이 도달불능'점'이기 때문일까?

 

ㄴ.우리가 걷고 있는 이 평범한 도시 한가운데에도,남극의 빙판에서 처럼 거대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크레바스가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ㄷ.강혜정의 얼굴을 보는 순간 별안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그것은 강혜정의 재능 때문일까,아니면

    나 자신의 어떤 마음의 상태 때문일까?

 

ㄹ.최민식이 남극일기를 하고,송강호가 주먹이 운다를 했으면 어땠을까..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

    을까?

 

ㅁ.어떤 사람들은 '존재의 사라짐'을 반복한다.왜일까? 아아,겁없는 인간들 같으니...

 

4.다음 영화..아마도 연애의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