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2017년 영화 -<역사>

폴사이먼 2017. 12. 14. 14:14

이때쯤 되면 항상 하는 일.그 해에 본 영화를 정리하는 글 쓰기를 시작해야겠다.시간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매우 간략한 정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수다벽 때문에 어떤 식으로 진행될런지는 현재 시점에선 예상할 수가 없다.그러나 수다벽은 좀 조심해야 한다.읽는 이들의 가독성 때문이 아니라,수다벽의 조기 발동은 최초 글들의 분량을 길게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뒷쪽에 대기하고 있는 영화들을 언급할 시간이 없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지기 때문이다..(혹시 그렇게 되더라도..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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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엔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루었던 영화가 몇 편 있었다.물론 2017년 만의 특징은 아니다.예전에도,아주 오래 전에도,또 비단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화에서도 역사는 영화의 단골 소재다.무엇보다 관객에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이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어느 정도는 다루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칼이다.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이미 관객도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서 그 내러티브를 비틀기도 쉽지 않으며 자칫하면 역사 왜곡논란을 피하기가 어렵기 십상이다.심지어 영화적 디테일에까지도 엄청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으로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역사를 다루기란 더더욱 어렵다.한 가지 사건을 바라볼 때에도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관점들이 존재하게 되었고,그러다보니 역사를 다루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할 가능성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따라서 역사를 다루는 '사극'영화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그 영화가 그 사건을 '어떻게',또 '어떤 ' 시점을 가지고 다루느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물론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에도 쉽지 않은 영화도 있겠지만.


1.대장 김창수





올해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가 다루는 역사적 인물은 백범 김구다.어떤 시점까지는 가장 무난하게, 가장 논란 없이 다루어져 왔던 인물이다.그것은 상해임시정부 주석으로서의 상징성,해방정국에서 한 쪽 편만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고 남북통합에 앞장섰다는 그동안의 평가,그리고 '백범일지'에서 묘사하는 독립과 통일에 대한 그의 감성적인 신념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그는 해방 정국 속에서의 다른 정치가들과는 매우 판이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령 이승만은 친미와 일제 잔재세력의 중용 그리고 그 후의 독재 때문에 도저히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또 여운형에게는 좌파에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레드 컴플렉스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반면 김구에겐 열정적인 헌신자라는 강력한 인상이 있다.그래서 20세기의 인물들은 대부분 당시의 정치 지형을 떠올릴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심지어 노무현이나 김대중까지도-  김구를 선택하곤 했다.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력들 중 그래도 가장 정통우파세력 -그러니까 형편 없는 친미나 갈 데 없는 친일 세력을 제외한- 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광복군에 그 뿌리를 둔다.장준하나 김준엽 같은 학병 출신의  청년 지식인 엘리트들이 그 사람들이다.그들의 대표선수 중 하나인 장준하 같은 사람들은 김구가 환국할 때 그를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얼마 안 있어 장준하는 김구를 떠나 이범석의 족청으로 간다.심지어 김구가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할 때,장준하는 단정을 찬성했다.장준하는 김구의 추종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확실한 반공우파였던 것이다.


그러나 장준하는 후일(그러니까 1972년 남북화해 분위기 때다) 김구의 통일 노선을 적극적으로 추앙한다.김구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꼭 장준하가 김구를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순 없지만, 백범이 가지는 상징성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이렇게 광복군 출신 정통우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즉 김구는 언젠가는 정확하고 폭넓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적 인물인 것이다.



이 영화 <대장 김창수>가 다루는 것은 '바로 그 김구'가 아니다.즉 이 영화는 김구에 대한 입체적 진실을 얘기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망명정부  독립운동 시절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훨씬 그 전으로 올라간다.20대 초반의 어린 시절,즉 영화 제목이 말하는 '대장'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논란의 여지가 분명한 '치하포 사건'- 주막에서 일본인 상인을 민비시해범으로 생각하고 때려 죽였다는- 부터 시작하여 옥중 생활과 이후의 탈옥을 소재로 정한 것이다.


치하포 사건은 마치 <장군의 아들>같은 액션 영화처럼 그려진다.사형수로서의 수감 생활은 그냥 <쇼생크 탈출>이다.농담이 아니라,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의 금전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고 동료 수감자들의 편지를 대필해 주고 수감자 중 폭력배 우두머리와 친구가 되는 등 이건 그냥 교도소 영화다.거기에 성장담이 곁들여진다.정진영이 연기하는 동료 사형수가 그에게 감화를 주어 좀 더 '어진 대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그리고  슬랩스틱 개그와 눈물이 등장한다.약간의 휴식과 로맨스가 덧붙여졌다면 이건 그냥 전형적인 한국 영화다.결국 탈옥으로 결말이 나자 관객은 그냥 멍해진다.주인공이 백범이 아니었다 해도 그렇게 큰 변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치 4부작 드라마 중 첫번째 에피소드를 본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혹시 진짜 4부작이면 어쩌나 싶어졌었다..)


확실한 영웅담도,새로운 역사적 시각도 이 영화엔 존재하지 않았다.무엇보다 인상적인 영화적 재미 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2.군함도


류승완의 <군함도>는 애초부터 영화로 만들기에는 어려운 배경을 가지고 있다.일제강점기 말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 발악과 폭압을 서슴지 않고 있을 때이며 군함도 감옥섬이라는 공간적 배경 역시 피압박자들의 저항이 매우 어려운 장소 임에 틀림없다.따라서 이런 시간 이런 장소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승리의 쾌감을 안겨 주는 것은 아주 지난한 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영웅담이라니 턱도 없다.게다가 영화는 일제를 대변하는 군함도의 일본군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협력했던 조선인 부역 세력의 이야기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친일 세력이라고 얘기될 수 있는 이 무리들은 상부에서 하부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조선인들을 군함도 안으로 이끄는 군함도 외부의 일제 협력자들까지 골고루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시각이다.일제 강점기가 일본의 침략만으로 또 일본의 폭력적인 통치 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나아가서 일제에 협력했던 그들이 또 그들과 유사한 세력이 지금까지도 뿌리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또 은연 중에 암시한다.(지금의 뉴라이트가 군함도 안에 있었더라면 이경영 처럼 행동하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관객들의 반응 역시 양분될 수 밖에 없다.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일본이라는 거대악이 친일파라는 소악에 일정 부분 가려진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부터 자신들이 시간을 내어 영화관의 안락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이런 종류의 불편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볼멘 입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반대의 반응도 상상할 수 있다.사실 그게 진짜였다는 것,부역자의 죄상 역시 일본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여전히 이런 식의 행동 패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관객들 역시 만만치 않게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본원적인 태도는 이런 식의 양분된 반응들에 대한 영화적 반응에서 찾을 수 밖에 없어진다.




이 영화의 반응은 <군함도>의 피압박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저항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무장했으며 저항했으며 폭동을 일으켰다고 말한다.굳이 역사적 진실을 돌아보지는 않는다.군함도 내에서 이런 종류의 대규모 저항이 있었고 또 심지어 거기에 성공해서 그 섬을 탈출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거기에 아랑곳 않은 채 영화는 조선인들이 성공적으로 일제에 저항했다는 판타지를 우겨넣는다.미국 oss 출신의 송중기가 있고 종로 주먹 소지섭이 있다.그들이 저항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일제에 끌려갔던 평범한 사람들이 일제의 폭력에 눈물겹게,또 의외로 조직적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또한 전형적인 공식들이 등장한다.총격전이 있고 액션이 있으며 감연한 로맨스 (소지섭과 이정현 사이에)가 있으며 아빠와 딸의 사랑(황정민과 김수안 사이에)이 있다.희생이 있고 개과천선이 있으며 심지어 개그와 춤과 노래와 눈물이 있다.희로애락들이 끼어넣어져 있는 것이다.어쨌든 그들은 승리한다.탈출하는 것이다.그곳이 군함도가 아니었다면,또 시대 배경이 분명하지 않거나 어떤 미래를 배경으로 했다면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군함도는 실재했다.이런 탈출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대중에 대한 영합일까? 상업 영화 공식은 일종의 영화적 군함도인 것일까? 우리 안의 친일 세력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50%의 관객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위안의 한 방편일까? 아니면 해피 엔딩이라는 최근 한국영화의 강박관념에 대한 또 한 예의 증상발현일 것일까?


증상? 증후? 올해에 등장했던 우리나라 영화 중 하나는 이런 증상을 거의 유감없이 드러냈다.이병헌과 강동원과 김우빈이라는 세대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들이 등장해서 금융사기범 조희팔 사건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낸 영화 <마스터> 가 바로 그런 영화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그러니까 영웅적 공권력이 민중의 공적을 해외까지 추적해서 결국은 잡아낸다는 해피엔딩적 결말- 이 영화엔 결정적 해피 엔딩이 하나 더 추가된다.강동원과 김우빈이  해킹을 통해 이병헌을 무일푼으로 만들고 그가 빼돌린 자금을 피해자들에게 몽땅 되돌려준다는 과감한 설정 하나를 영화 말미에 끼워넣어둔 것이다.이 설정은 관객들에게 정의의 완결이라는 행복한 감각을 선사한다.말하자면 민사와 형사가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실제의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영화의 위로가 오래 갈 수 있었을까? 영화가 끝나 극장 바깥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원래 가지고 있는 현실이 더 심한 압박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까? 이렇게까지 행복한 결말은 과연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 것일까.이것이야말로 해피 엔딩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지고 온 곁다리적 부작용은 아니었을까.나아가서 왜 이 시점에서의 한국 관객들은 이렇게 영화적 승리를 갈구해야만 하는 것일까.눈 앞 현실의 패배가 너무나 뻔뻔하게 넘실거리는 것에 대한 반발,그리고 그것에 대한 거짓 치유로서의 승리는 아닐까.


정권이 바뀌고 감옥 갈 사람들이 다 감옥 가게 되면 (그래서 MB의 감옥행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런 해피 엔딩은  사라지게 될까.궁금하다.MB 교도소행 이후의 영화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