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Stagecoach (역마차 1939 존 포드)-78년 전

폴사이먼 2017. 1. 9. 17:12

1.78년

 

웨스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stagecoach> 로,또 존 포드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쩌면 이 영화 이전의 서부 영화들을 너무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역마차> 이전에도 수많은 웨스턴 영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다.웨스턴이란 용어 자체가 등장한 것도 거의 20세기 초엽의 일이었으며,영화 이전에 싸구려 펄프 문학과 대중을 위안하는 엔터테인먼트 - 마치 지금의 서커스처럼 승마술과 채찍 다루기,즉 카우보이들의 묘기를 연상케하는 쇼를 상연하는 수많은 떠돌이 단체들이 존재했었다 - 가 일련의 서부영화공식을 만들어냈으며,서부의 사건들을 소재로 한 무성영화들은 매우 인기있는 쟝르였다.

 

어느 순간 버려진 서부영화 - 웨스턴은 유성 영화 초기에 버려질 수 밖에 없었다.유성,즉 '소리'가 등장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어느 정도의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종류의 장르가 바로 웨스턴이다.야외 로케이션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영화가 바로 존 포드의 이 영화 <역마차>가 되겠다.물론 이건 오버다.<stagecoach> 말고도 또다른 영화들이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기에 나타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그러나 그 어느 영화도 후대에 <역마차> 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단순히 웨스턴 영화의 클래식이 아니라 모든 영화들의 정전처럼 떠받들어지는 이 영화의 영향력은 이렇게 머나먼 극동의 작은 도시에서 몰래 몰래 영화를 보는 사람의 태도에까지 문제를 일으켜,서부 영화를 보겠다며 맨 처음 집어든 영화가 결국 <stagecoach> 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또 미래는 알 수 없다.따지고 보면 겨우 78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인류 전체 예술사 속에 그 흔적을 남기게 될지 어떨지는 또다른 78년들이 몇 번이나 흘러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ㄴ.압축

 

그러나 78년 전의 이 영화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그러니까 관객을 자극할 수 있는 -  웬만한 요소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우선 추격전(the chase) 이 있다.등장인물들은 시종일관 인디언들의 존재에 위협받으며 그들에게 쫓긴다.추격전이 있으니 전투가 있고 전투가 있으니 총격전이 있다.당연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추가되고 상상도 못 할 고난이도의 스턴트가 끼어든다.

 

 

(추격전 중간에 야키마 카누트가 펼치는 역대 최고의 스턴트 장면이 등장한다..)

 

또 복수극이 있다.존 웨인이 연기하는 링고(ringo)는 가족을 죽인 원수를 찾다가 역마차에 올라 탄다.그는  탈옥수이며 탈옥수가 있으니 그를 쫓는 법 집행자 -보안관- 가 당연히 따라 붙는다.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그리고 변형된 로맨스로서의 기사도가 주요한 로맨스의 대조점으로서 등장한다.(탈옥수인 존 웨인과 클레어 트레버의 로맨스에 ,루이스 플래트가 연기하는 기병대 장교의 부인을 시종일관 젠틀하게 보호하려는 과거의 군인이자 자금은 타락한 도박사인 존 캐러다인의 시도가 묘한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런 감성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캐릭터들간의 갈등이,여러 가지 층위 하에 -계급과 인종과 성별로 - 존재한다.캐릭터들의 상황에 맞추어 기본적인 계층적 갈등이 종종 첨예하게 드러난다 (기병대 장교 부인은 살롱에서 일하다가 청교도적인 여성 무리에게 마을로부터 쫓겨난 여주인공 댈러스의 도움을 야멸차게 거절한다.심지어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까지 싫어한다.존 웨인이 연기하는 링고는 역마차에 동승한 일부 승객들에게 무시당하는 그녀를 분명한 동류의식 하에 보호하고 ,이것이 연정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존 포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은 이 모든 것들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빠른 시간 내에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그는 시간을 질질 끌거나 장황하게 이유를 붙이거나 심층적인 심리분석을 한답시고 관객을 괴롭히지 않는다.한 두 마디의 대사나 두세가지의 몸짓으로 캐릭터들의 특징을 재빨리 규정하고 갈등이 필요하면 그것을 묵직하면서도 깨끗한 덩어리로 만들어 관객들의 눈 앞에 떠억하니 던져놓은 후,다음 장면으로 훌쩍 넘어가 버린다.

 

이런 깔끔하고 정교한 통제력은 결국 미국 상업영화의 중요한 규범과 특징으로 변해갔는데,이것이 당시 미국 영화의 스튜디오 시스템의 비즈니스적 효율성과 맞물려 최대한도의 속도감과 탄력성을 만들어냈다.(그리고 후대 영화인들이 가장 부러워하고 가장 닮고 싶어했던 것도 바로 존 포드의 이런 요소들이었을 것이다)

 

아예 시작부터 그렇다.영화 초반부에 그는 등장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호출하는데,그들은 각각 간명하게 등장하여 자신의 가장 개성적인 면을 아주 잠깐 드러내고는 관객에게 확실한 인상을 준 채 퇴장한다.

 

 

 

예의 기병대 장교 부인과 도박사,은행 돈을 횡령하고 도망가는 은행가,배짱 넘치는 알콜 중독자 의사,조용하고 소심한 세일즈맨,링고를 배려하는 보안관과 영화의 코믹한 면을 담당하는 역마차 몰이꾼,여주인공인 댈러스,그리고 주인공인 링고까지..그들은 바람 같이 등장해 분명한 이미지를 남긴 채 퇴장한 후 역마차의 구성원을 이룬다.

 

존 포드가 그들을 소개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5분도 되지 않는다.그러나 관객은 그 짧은 동안에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 전체를 확실하게 인지하고,앞으로 그려질 구도에 대해서도 어렴풋한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된다.그리고 이런 소개 과정 자체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영화들의 전범이 되었다.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가령 인디언들의 위협이라는 위험 아래 다음 지점으로 역마차를 전진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투표는 실내 장면 몇 분으로 끝난다.그러나 그 속에는 관객들이 인지할 수 있는 온갖 갈등이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식탁 장면.기병대 장교 부인은 댈러스를 대놓고 무시하고 도박사는 여전히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다.은행가는 자신의 음식을 먹는 일에만 빠진 채 그들 근처에 앉아 있고,뾰로통해진 댈러스 옆에 앉은 링고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영화 초반 그들의 갈등 구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게 하고서도 포드는 머뭇거리지 않는다.(물론 기병대 장교 부인의 출산을 돕는 인디언 여성과,그 여성이 멕시칸 카우보이들의 밴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어쩌면 사족 같은 장면이 끼어 있긴 하지만,전반부의 압축이 너무도 강렬해서 이 사족이 휴식과 긴장의 이완을 위하여 필수적인 장면들로 느껴질 지경이다) 머뭇거리기는 커녕,바로 추격과 전투로 넘어간다.가장 평균적인 관객들이 가장 애타게 기다렸을 이 대목으로 넘어간 그는,내러티브와 캐릭터의 압축이라는 그 동안의 태도를 잠시 던져둔 채,최대한도의 스릴을 제공하려고 안간힘을 다 한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처리하지 않는다.총과 화살,말과 마차,말발굽과 마차의 바퀴,도전과 응전,죽음과 부상,두려움과 과감함 ,무시무시한 스턴트와 안타까운 희생까지,영화는 거대한 평원을 무대로 엄청난 속도감을 동반하여 기본적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싸움 구경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 전투엔 조금의 복잡함도 없고 한 치의 복선도 없다.우리편과 상대편,삶과 죽음 만이 하늘 아래 넘쳐나고,장면과 장면들은 78년 전의 관객의 마음과 두뇌를 완전히 장악할 정도로 완벽하다.갑작스럽게 기병대가 나타나서 78년 전의 관객에겐 안도의 한숨을,78년 후의 관객에겐 어딘가 허전한 마무리를 선사하게 될 때까지,그는 가볍지만 밀도로 가득한 돌들을 들어 스크린 밖으로 난사한다.강한 비트로 가득 찬 록 콘서트가 진행된 것이다.

 

이 직선적 진행에 추가된 앵콜 공연은 물론 링고의 복수극 -건맨의 결투가 빠지면 premiere western으로의 자격이 없다 - ,또 그의 로맨스,마지막 결말 -링고와 댈러스를 탈주시키는 보안관과 의사의 장면은 3년 후 만들어진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과 너무도 닮아 있다- 로 구성되어 있다.

 

남는 것? 당연한 후련함이다.물론 마지막 결투가 너무나 전형적이고,'저들은 문명 (civilization) 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하겠군 - 이라는 마지막 대사가 사실은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그 후련함에 손상을 가하지는 않는다.그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