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1
이 글은 '파리 마치'가 지난 수십년간 행했던 작가들과의 인터뷰들을 편집해 묶어놓은 <작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후 찾아왔던 단상들에 대한 모음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가 된 작가들은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필립 로스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그리고 E.M. 포스터이다.
1.틈새
에코는 그 바쁜 삶의 와중에서도 줄기차게 글을 써댔다.글을 쓸 시간을 얻기 위해 그가 찾아내 활용한 것은 삶의 틈새들이었다.삶의 한 짧은 과정,혹은 일상의 가벼운 일들과 일들 사이,그 속에서도 글쓰기가 가능하고 생각의 진전과 교감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맞다.시간이 없음을 탓하기 전에 삶의 그 짧은 틈새에 벌어지는 불필요한 일들을 제거하고 줄이는 것이 글쓰기의 필수적인 첩경이다.분주함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생활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그 유용한 틈새 마저 찾아내기 어렵다는 읍소는 전적으로 핑게이며 ,오히려 갖춰야 할 것은 체력이다.집중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에코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2.텍스트
모든 텍스트는 작가 보다 훨씬 똑똑하다.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를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평론가가 작가 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작가가 쓴 텍스트에 매료되지 않은 평론가가 그 텍스트를 멋지게 읽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텍스트를 사랑하지 않은 평론가가 쓴 글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알아본다그 신랄한 비평 속에도 텍스트에 대한 애정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우니까)그러나 어떤 텍스트는 작가도 평론가도 심지어는 독자의 손에서도 벗어나 스스로의 유기체적 운명을 살아간다.그런 텍스트들은 좀 무섭다..
3.WWW
모든 정보들을 모아놓은 가상공간 인터넷,그리고 그 바다에서 능숙하게 헤엄치며 -그러나 사실상 명랑하고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리며 -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문화라는 이름 아래 빨아들이는 사람들은 사실상 좋은 작품을 쓰기 어렵다.정보의 총합에서 오는 무게가,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한 자락의 밝은 광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어떤 의미에서 인터넷은 가없는 소비이며,열심히 기억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망각할 수 있어야 자신의 글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4.COMEDY
희극적 감정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유한성,인간의 일회성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절망,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다.그리고 이것은 결국은 터져나오는 단 한 번의 홍소와 ,또 맑고 차가운 입술 만의 미소로 연결된다.진짜 희극은 고작해야 몇 차례의 미소를 독자에게 제공한다.
5.출근
진짜 작가들은 회사원들처럼 일한다.정시에 출근한다.(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 역시 노동자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영감이 떠오르든 그렇지 않든,그는 고립된 공간에 자신들 구겨넣고,자신의 신경을 끌로 긁는다.여기서 의외로 중요한 것은 고립이다.그 모든 인간관계들을 다 챙겨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는 것은 습관의 거대한 관성에 자신을 맡기는 일인데,고립을 습관으로 갖는다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으므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허물어져 버리고 말게 된다.
그러나 고립에겐 고립의 맛이 있으니 포기해야 할 때는 재빨리 포기해야 한다.국외자의 시선을 포기할 때,그는 최소한 문학의 길 역시 포기한 것이다.
어디선가 찾아낸 헤밍웨이의 한 마디다.
글쓰기는 그냥 피흘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