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2016년 여름-뜨거운 여름 속에서의 생각

폴사이먼 2016. 7. 27. 15:55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소속감'이라는 측면에서 나는,남들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보통 우리 직업 가진 사람들은 치열하다 싶을 정도로 타이트한 조직 생활과 어딘지 바보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위계질서를 가진 도제 생활을 거친 뒤,이전과는 달라진 경제적 보상을 얻으며 좀 더 느슨한 조직으로 옮겨 가게 되고 그러다 결국 홀로 조그맣게 자신의 일을 지속하다가 은퇴해왔다.이것이 대개의 20세기 의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대하거나,또는 형편없이 조잡한 자본력이 업계 내로 진입하게 되면서 의사들의 이런 삶의 틀에는 확실하게 변화가 오게 되었다.직업별 부도율은 놀랄 만큼 증가했으며 소위 '동네의원'이라 불렸던 구멍가게들은 점점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행여나 남은 중소의원들은 미용과 성형과 몸매 관리와 노화 방지 같은 '목숨'과는 관계가 없는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되었으며,그마저도 안 되면 결국 다시 '느슨한 조직'쪽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과거,전통적 지식 기술자로 불렸던 이 계층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 직업적 위상에서 볼 때 거의 영락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다.사실 그렇지 않은 전문가 계층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말이다.(물론 반론제기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영락은 커녕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 역시 가능하다.다만 이 계층이 자본에 대해 지나치게 취약해졌고,내부적인 윤리 의식도 비할 데 없이 희미해졌고 자괴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 만은 분명하다)


가령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라.종합병원의 주인,종합병원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이제 의료인들이 아니다.자본을 가지고 있는 소위 '이사장'들이 등장하게 되면서,대중예술들은 머슴 역할을 하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가령 <태양의 후예>에서의 송혜교는 병원 이사진에게 성적 유혹과 성희롱을 당하며,<닥터스>와 <뷰티풀 마인드>는 자본과 승진에 연관된 병원 내부의 암투를 그리며 과거 의사 계층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이때 의사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과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름다운 로맨스(송혜교의 경우를 포함하여)와 신적인 테크닉을 가진 의료기술자,음모로 가득한 내부자들,혹은 어딘지 부족한 코미디언이 대부분이다.<하얀 거탑>과 <그레이 아나토미>가 드라마 속에서의 의사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미리 예시했다고 하더라도,그 일본과 미국의 의사들은 이 정도로 자본력에게 굴복하며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의사들의 -비단 드라마 속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돈에 대한 경도는 지나친 구석이 없지 않으며,그것은 분명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들은 의사들의 일반적인 경로에 영향을 미쳐 확실한 변환점을 만들어 냈으며,따라서 새로운 전형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이제는 차라리 제대로 된 의료경영학이나 실물경제학 또는 의료윤리학을 의과대학의 정규 코스로 편성시키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단순히 냉소적으로 하는 말만은 아니다)


곁가지로 흐른 이야기가 정처없이 길어졌지만 이런 의사들의 혼란스런 여정들과는 상관 없이 적어도 나는 그들의 전형적인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이쪽으로 빠지고 저쪽으로 도망치며 적어도 내게는 스펙터클한 시간들을 보내왔던 것이다.너무나 많은 실수와 실기,이제는 자연스럽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오판이 내 과거 행적을 수놓았다.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그래 봤자 쓸모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나름대로는 앞뒤가 맞는 삶을 살아왔다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나는 '원래 나였으므로'가 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 1년간 시도했던 변화는 사실 그리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내 성향과 내 인내력 레벨과 또 사회경제적 상황이 나를 어쩔 수 없이 변화하도록 만들었다.우선 나는 내 삶에서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저히 줄였다.나는 프리랜서가 되었고 수입의 감소를 받아들였다.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일을 했고 매우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딱히 즐겁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지난 시절의 과로에서는 약간 벗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프리랜서에게 노동량이란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어떤 때는 형편없이 과도한 노동 시간을 맞닥뜨려 놀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일해야 했다)


반면 가족에 대한 비중은 좀 더 커졌다.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아이 앞에서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 보면 아이가 내게 자신의 일상생활을 조용하게 털어놓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조금은 집안일에 익숙해졌고 그동안 소홀했던 집 안에서의 노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다만 직업적 삶의 비중 감소가 내면으로 향하는 삶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전혀 핀트가 맞지 않는 착각이었다) 오히려 내면을 예리하게 만드는 긴장의 날이 무뎌져가는 것을 느꼈는데,나는 그것이 정신적 육체적 노화의 한 단면인지 혹은 현상의 안정을 염원하는 본능적 감각인지 그것도 아니면 타이트한 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내면 역시 외면의 타이트함에만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버린 것인지 적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프리랜서로서의 일천한 경험 역시 일정 정도 이상의 혼란을 가져왔는데,결국 바다 너머 중국에까지 발을 뻗게 되는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예전 삶의 좁은 틀 속에서는 도저히 계획될 수 없을 기획이었지만,프리랜서라는 자격의 탄성은 일들을 불규칙한 속도로 진행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길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신경전이 계속되었는데,내 대륙 쪽 파트너들로서는 그런 종류의 신경전에 내가 엄청난 강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삶의 실용성과 계산에 무관심한 사람일수록 신경전에 강하고,때로는 그러한 분쟁을 전투도 전쟁도 아닌 놀이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들은 몰랐다.대부분의 비즈니스에서 전혀 인정되지도 또 공감되지도 않는 내 원칙에서 나는 전혀 물러서려 하지 않았고 그들이 당근처럼 제시하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핑게는 우리나라 관료들의 일상적 태도 속에서 으레 관찰해왔던 것이었고,속임수들은 너무 싱거워서 흥미가 없었다.때로 나는 그들이 매우 솔직한 종류의 인간들이라 생각되어서 그들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자세를 취했는데,그런 자세가 상대편을 약간 질리게 만든 것도 같았다.더구나 나는 의외의 순간에 결정적인 'NO!'를 연발해서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고,그 하루의 끝은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즉 나는 무관심 덩어리처럼 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