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열병의 방(아피찻퐁 위라세타쿤) PART 3.-강,메콩 강 그리고 두 개의 스크린.

폴사이먼 2015. 9. 24. 16:09

그리고는 메콩 강이 등장한다.누런 색의 탁한 강물이 마치 움직이지 않는 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물론 이 강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2013년 영화 <메콩 호텔>에 등장했던 강이다.그 영화에서 이 강은 인간과 유령들과 귀신들이 살아 움직이는 '메콩 호텔'이라는 세계의 현존을 곁에 두고 영원한 지구의 모습처럼 흐르고 있었다.호텔 안에서는 살인과 식인이 6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고,그 사건의 흐름들과는 상관 없는 영원한 또 하나의 시간 흐름을 이 강은 상징하고 있었다.

 

그 영화 속에서,사람들은 때로 호텔 발코니에 서서,혹은 앉아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둘 중 한 사람이 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다..)

 

또한 저 테라스에서는 메콩 강물과 맞닿아있는 강변이 등장했었는데 포크레인 한 대가 끊임없이 강변의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나는 2014년에 강과,그리고 강변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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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점점 넓디 넓은 메콩강으로 이동한다.강 위엔 보트들이 떠다니고 제트스키가 강을 역행해 올라가거나 소용돌이를 만든다.그러나 강은 여전히 꼼짝 않고 거기 서 있고 - 마치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지해 있는 것 같다 - 관객 역시 고요하게 대치하며,거대한 시간이자 우주인 메콩 강을 응시한다.모든 존재들이 녹아드는 우리의 배경을 본다.,

나는 강을 시간으로 본 것이다.또한 강변과 포크레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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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과 삽은 강물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시간 세계 안에서 인간이 행동하고 이어가는 잘디 잔 문명을 상징한다.그러나 결국 어떤 사람 - 나는 그 어떤 사람을 꿈에 사로잡힌,꿈이라는 또다른 현실을 자신의 고유하고 분명한 세계로 감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은 인간의 현실인 문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원한 여행을 지속한다.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자처럼 말이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여행이다.

 

 

 

 

 포크레인이 문명이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하지만 (이명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썼다.

 

 

(그리고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알 수 없는 남자..나는 저 남자야말로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열병의 방>에 등장하는 메콩 강은 <메콩 호텔>에 등장하는 메콩 강과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르다.물론 <열병의 방>에서도 메콩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둘 혹은 세 사람이 강변을 망연하게 쳐다보거나,또 그러다가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이들은 <열병의 방>에 등장한 메콩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저들과 메콩 강이 등장한 순간 나는 <메콩 호텔>의 그 장면들이 다시 등장하는 거구나 ,싶어 마음을 놓았다.그러나 다음 장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메콩 강 위에서 다른 시도를 한다.호텔의 테라스를 떠나 메콩 강물 위로 들어가는 것이다.즉 그는 메콩 강을 떠 가는 배를 보여준 다음,배 안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 배 속의 사람들을 응시하기 시작한다.배 안의 청년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배 바깥의 강변을 바라보고 ,또 강변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을 본다.(<열병의 방>에서 포크레인이 등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승선객들이 바라보던 강변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이 피어오르는 순간,광주의 관객들 앞에 두번째 스크린이 나타난다.그리고 그 스크린에도 메콩 강이 있고 배가 있고 배 안의 승객이 있다.즉 관객의 눈 앞에 두 개의 스크린이 나타나게 되고,그래서 두 개의 강이 보이고 두 척의 배가 보이며 두 부류의 승선객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그 두 세계는 제각기 다른 시간을 경험하고 진행해 간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그런데..이를 두고 화면이 분할되었다고 얘기해야 할까,아니면 원래 분할되어 있는 세계들 중 두 세계를 보여주는 거라고 말해야 할까..)

 

아무리 보아도 내 눈엔 두 스크린 속 배가 동일한 배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며 배 안에 승선한 사람들도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물론 반대의 가능성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비슷했다.그들은 얘기하고 배 바깥을 응시하고 강-시간을 떠다녔다.

 

변했다.다른 요소가 첨가되었다.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도 흥미진진함을 감출 길이 없어서 입 안에 침이 고인다.그러나 저 지루한 응시들이 눈 앞을 휙휙 스쳐 지나가고 있으므로 나도 빨리 생각하고 반응해야 한다.우선 2014년의 메콩 강에 대한 내 생각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특히 이런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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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간 존재들이 모두가 영원히 개별적인 섬들이라면,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 사이를 흐르는 강물과 바다다.시간 자체의 환생인 강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그 강을 인간은 정신으로 여행한다.영혼으로만 사물을 통과하며 정신으로만 메콩 강변에 가 닿는다

 

<열병의 방>에서 시간을 여행하고 견디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정신 뿐만이 아니다.육체에 깃든 마음과 우리의 일상 생활 - 강변에 대한 응시처럼- 속에서 작동되어지는 생명 역시 고려해야 한다.육체와 생명이,세포의 흐름과 신경계의 약동이 메콩 강변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중요한 요소로 추가되어야 한다.

 

거기에 스크린은 두 개다.시선이 많아졌다.두 배에 탄 승객들의 시선,강가의 관람자들의 시선,저 스크린 속 영상을 만든 두 대의 카메라 뷰 파인더,2015년 9월의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예술극장에 앉은 몇십 명의 관객들의 시선과 시선들이 한 공간 속에서 신비하게 얽힌다.

 

우선,시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는다.우리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생각 따위는 쓰레기 통 속에 던져 넣어져 분리수거되어야 한다.시간 역시 통합되고 뭉뚱그려진 덩어리가 아니다.잘게 분화되고 끝없이 갈라지는 거미줄 같은 미로다.이미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아니므로 세계의 이면에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진실과 힘이 있어서 그 동력에 의하여 강물이 흘러간다는 생각도 지워야 한다.따라서 우리는 죽는 그 날까지 겸손해야 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 부드러운 명철함으로 우리 존재를 감싸안아야 한다... 

 

막,정신없이,생각들이 지나가는데,이제 <열병의 방>은 새로운 스테이지로 진입해 들어간다.스크린 대신 빔 프로젝터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