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2014년 영화에는 호텔이 있다4.-<메콩 호텔> Part3-60분과 600년

폴사이먼 2014. 12. 17. 14:05

이제 영화는 마지막 3분의 1을 향하여 달려간다.이 글 역시 그 끝에 이르른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 깐느 영화제에 출품했던 아핏차퐁의 작품에 대해 리뷰를 썼던 유럽의 평론가다- 그의 영화에 대하여 ,거의 전위적 설치미술에 가깝고 관객에게 몹시 불친절하며 영화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지 않다며 비난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류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나는 오히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가,적어도 한 두 개의 결론과 느낌을 향하여 차분히 전진해 나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친절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의 영화를 난삽하게 흐트러뜨리며 끝맺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여러 개의 시간대와 여러 쟝르의 영화들과 여러 갈래의 인물들을 자못 불규칙적으로 얽어놓고 있긴 했지만,거기엔 분명한 이유와 명분이 있으며 최후의 장면들을 향하여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아갔다.이 영화엔 확실한 몇 개의 끝맺음들이 있다.마지막 몇 개의 결말부를 나눠서 얘기해 보자.

 

ㄱ.삶의 테라스

 

마지막 3분의 1의 시작은 호텔 테라스다.이번엔 통이 바닥에 엎드려 내장을 먹고 있다.관객은 생각한다.

-그도 귀신 폼이 되었구나.

 

 

그러나 소녀 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그 남자 몸에서 나와,그리고 항아리로 돌아가.

 

통은 엄마 젠의 목소리로 딸인 폰과 대화하다가 쓰러진다.엄마이자 귀신 폼인 젠은 이번엔 통에게 빙의했던 것이다.

 

 

소녀이자 유령인 폰이 등장하여 통을 일으킨다.

 

 

:: 끝내 메콩 호텔의 테라스는 귀신 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아니다.폼 역시 세계의 한 요소였다.귀신과 귀신의 빙의와 유령과 시간을 오가는 인간들은 한 데 어울려 삶의 테라스를 이루었다.물론 귀신은 어찌 보면 사악하고 어찌 보면 파괴적이지만 그것은 그의 본성이다.그 본성에 대해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으며 그저 인정할 뿐이다.

 

ㄴ.삶의 테라스2.

 

한 때의 연인 통과 폰은 그들이 사랑했던 테라스에 서서 대화하기 시작한다.시간이 흘렀다.통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폰은 통에게 그들이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느냐고 묻지만 통은 이제 그 기억은 희미해졌다고 대답한다.유령이 된 폰은 끝없이 통을 쫓아다니지만 통 역시 끝없이 시간과 우주를 유랑한다.그는 자신이 수많은 세상을 거치며 환생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는 자신이 말이 될 것이며 벌레가 될 것이며 필리핀의 소년이 될 것이라고 되뇌인다.도저히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무엇을 쫓느냐는 폰의 질문에 통의 시선은 그저 먼 메콩강으로 향한다.

 

:: 매우 동양적인,시간과 세계를 배회하는 흩어진 혼백들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 같다.그러나 순간 스치는 생각들.통의 600년이 우리의 6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우리의 600년이 통의 6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시간의 무지막지하고 야수적인 탄력성에 대한 공포,어쩌면 우리가 우연히 3초 동안 세상을 떠나 멍해 있던 그 시간 -흔히 말해 멍때리고 있던 그 시간-,또 우리가 예전의 우리가 아니었던 듯 살았던 어떤 두 달 동안,현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어떤 세계에서 실은 우리가 300년의 삶을,지금의 우리가 아닌 유령이나 귀신으로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ㄷ.기계-the machine.

 

그리고 통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 이어진다.어찌 보면 서로 전혀 연결되지 않는 말들이다.

-이 기계는 영혼이 육신 밖으로 여행하도록 도와 줘요.

 

그가 이 말을 할 때,화면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그 남자,방콕에 살았던 소녀 폰과 인터뷰했던 남자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헤드셋 혹은 권투 선수의 헤드 기어같은 '기계'를 쓰고 강을 향하여 등 돌려 앉아있다.통은 말한다.

 

- 아무도 영혼의 존재를 의심하지는 않아요.

 

:: 그렇다,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게도 최소한의 전제는 필요하다.

 

그리고 또 수수께끼 같은 말.

-당신이 온 걸 알지만 '그'는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 내가 아니라 '그'. 통은 자신을 '그'라 호칭한다.혹은 기계를 머리에 쓴 저 남자가 그일 수도 있다.그와 통은 서로 융합되거나 분화된 것일까?

이때 화면은 강변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그는 끝없이 강변을 거슬러 올라간다.

 

 

 

:: 이 장면? 이 강변의 장면은 당연히 두번째 3분의 1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던 강변 장면,

강변의 흙을 파헤치는 포크레인 장면과

 

 

 

호텔 반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흙을 파는 남녀 장면의 댓구다.

 

 

 

포크레인과 삽은 강물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시간 세계 안에서 인간이 행동하고 이어가는 잘디 잔 문명을 상징한다.그러나 결국 어떤 사람 - 나는 그 어떤 사람을 꿈에 사로잡힌,꿈이라는 또다른 현실을 자신의 고유하고 분명한 세계로 감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은 인간의 현실인 문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원한 여행을 지속한다.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자처럼 말이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여행이다.

 

통의 말은 이어진다.

 

- 그의 영혼은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죠

- 우리에겐 비책이 있으니까요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인 거에요.

 

그의 비책이란 바로 남자의 머리에 씌워졌던 '기계'이다.기계는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 영혼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비책이라고 통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기계의 정체?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것은 영화이다.사실 맞는 말 아닌가.영화는 우리의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게도 하고,가 본 적 없는 미래로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기도 한다.저 '기계'는 우리의 영혼에 수많은 쟝르의 영화를 동시에 주입시켜 온갖 강변을 다 여행할 수 있게 하고,온갖 캐릭터들의 면면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맞다,그것이 영화다.그리고 이것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관이자 영화학 개론이다.

 

::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또 한 가지의 생각도 가능하다.저 기계-영화에 의해서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유랑하는 영혼,즉 느낌과 꿈이 오히려 '진실'일 수도 있다.배터리가 다 한 그 순간,혹은 꿈과 느낌을 이룬 순간 우리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그곳은 그냥 우리 존재의 여분과 같은 곳일 수도 있다.꿈 쪽이 맞는 진실이라면 현실은 또한 나의 진실이 아니다.영혼이 꾸는 꿈을 상상 -현재엔 실존하지 않는- 이라고 본다면 저 기계~영화는 순수한 꿈을 추출하는 grinding machine이 된다.

 

ㄹ.비탄의 침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폼-귀신의 운명을 빼놓지 않는다.(그는 어쨌든 서사를 완결시킨다) 아핏차퐁의 영원한 여배우 제니이라 퐁파스 - 그녀는 오래 전 사고로 다리 하나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그래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그 목발은 언제나 영화에 등장한다.그녀는 영화를 찍지 않을 때면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다고 한다- 의 침대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유령으로 변한 딸 폰과 귀신이자 괴물인 폼이 되어버린 엄마 젠은 저 문제의 침대에서 대화한다.젠은 그동안 살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딸을 찾는다.(그녀에게 딸 폰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600년째 갇혀 있으며 누군가와 교감하고 싶다며 젠은 운다.영원히 흩어져버린 혼백들이다.딸은 대답한다.이젠 내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우리의 기억은 하나일 거라고.

 

이 장면은 <메콩 호텔>에서 가장 서정적인,가장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다.인간은 유랑하고,피와 비탄의 침대에서 혼백과 귀신의 기억이 하나가 되는 <메콩 호텔>내러티브의 끝이다.

 

::어찌 보면 가장 비관적인 상상,현재 인간들의 시간을 살아가지 않는,살아갈 수 조차 없는 존재들이 이룬 기억의 통합과 최후의 교감,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면,그 영혼은 건조하게 영화적으로 환생한 슬픔인 것이다..

 

 

ㅁ.모든 것을 쳐다보는 강

 

그리고 나머지 영화의 시간들은 모두 강에게 할애된다.아핏차퐁과 기타리스트 차이 바타나(혹은 다큐멘터리 감독) 는 간간이 수수께끼 같은 얘기를 주고 받으며 강을 쳐다본다.

 

 

강에서 본 것들에 대한 얘기다.

 

-나무가 떠올랐어.두번,세번,네번째 떠올랐어.뿌리가 공중으로 뻗어나가.그 영혼은 그들의 서식지를 재건해.정원엔 물이 들어차고..

(대강 이런 이야기..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과연 강일까 싶은 대화다)

 

화면은 점점 넓디 넓은 메콩강으로 이동한다.강 위엔 보트들이 떠다니고 제트스키가 강을 역행해 올라가거나 소용돌이를 만든다.그러나 강은 여전히 꼼짝 않고 거기 서 있고 - 마치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지해 있는 것 같다 - 관객 역시 고요하게 대치하며,거대한 시간이자 우주인 메콩 강을 응시한다.모든 존재들이 녹아드는 우리의 배경을 본다.,

 

 

 

:: 우리 인간 존재들이 모두가 영원히 개별적인 섬들이라면,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 사이를 흐르는 강물과 바다다.시간 자체의 환생인 강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그 강을 인간은 정신으로 여행한다.영혼으로만 사물을 통과하며 정신으로만 메콩 강변에 가 닿는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60분간의 러닝 타임 안에 600년 이상의 시간을 담아냈고 이윽고 영혼의 시간을 창조했다.미래의 영화..맞다.그는 사기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