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수상한 그녀>-천연덕스럽다는 것.

폴사이먼 2014. 7. 22. 17:34

이젠 영화 글로 돌아간다.보았던 영화들에 대한 짧은 글들을  다시 쓰기로 한다.그러나 어제 보았던 영화 ,혹은 최근에 보았던 영화들을 바로 바로 쓸 시간은 없다.그야말로 생각나는 대로 순서와 상관 없이 글을 올리게 될 것 같다.따라서 시의성이나 최근 영화들의 경향이나 정보와는 거리가 먼 글들의 시리즈가 펼쳐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어쩔 수 없다.양해하시라..물론 일기장 형태로 갈 수도 있겠지만 게으름과 시간 없음이 모순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내 삶을 다시 일별해 보자면 일기장 형태의 영화 리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그러나 또 모른다.언젠가는 그렇게 될런지도...

 

가령 어젯밤 보았던 <혹성탈출>에 대한 글을 지금 쓸 수도 있다.나는 <혹성 탈출>을 보자 마자 영화의 제목과 동명의 별명을 가졌던 친구인 모 대학 영문과 교수에게 '너 영화에 나왔다...'라고 문자를 보냈고,그는 번개같은 답장 '뭐 임마..'를 보내왔었다...그러니까 바로 그런 얘기로 글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또 나는 유인원인 주인공 시저에 관한 영웅 서사의 중간준비단계 격인 이 영화에 대해,반란을 일으키는 라이벌 유인원인 코바가 지나치게 비열하고 인간들의 우두머리 격인 게리 올드만 역시 매우 허접하게 그려졌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투 씬에 대해서는 약간의 찬사를 보내고 말았을 것이며 유인원 무리들의 인간 포로들에 대한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부분에 대해서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불쾌함을 토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무엇 보다 용서를 비는 유인원의 동작 - 두목을 향하여 고개를 조아리며 손바닥을 내미는 - 을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 생활에 응용한다면 매우 유쾌하고 명랑한 장면들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농담하며 글을 끝맺었을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당기지 않았다.그야말로 이 영화가 전체 시리즈 중간단계의 영화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대신 내가 고른 영화는 아주 예전에 본 영화 ,황동혁이 연출한 <수상한 그녀>이다,.

 

수상한 그녀

 

개봉한지,또 본 지 너무 오래된 영화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원래 시간 개념이란 제각각이며 21세기에 들어서는 거의 기호화되어 버렸다..내가 이 영화를 지금에야 언급하는 것이 너무 느린 일일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어쨌든 쓴다.잔소리가..너무 많다..

 

 

 

이 영화의 장점이고 미덕이자 또 단점은 영화 전체가 가지는 '천연덕스러움'에 있다.천연덕스럽다...나는 영화를 보자 마자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을 향하여 '음,이 사람들 참 천연덕스럽구나..'라는 혼잣말을 보냈었다..

 

 

천연덕스럽다 (天然----) [처년덕쓰럽따]

 

형용사]
1. 생긴 그대로 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
2. 시치미를 뚝 떼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태도가 있다.
[유의어] 능청스럽다, 자연스럽다, 천연하다1

 

그렇다.천연덕스러움이란 이런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국어사전 서술의 핵심은 아마 '자연스러운 느낌'과 '시치미를 뚝 떼다'라는 말에 있을 거다.맞다.이 영화는 사전의 설명 그대로 천연덕스럽다.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태도가 있다.

 

사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어쩌면 닳고 닳았다.일년이면 수십 편의 영화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관객들을 찾는다.그러나 시간 여행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에 비하여 이 영화 <수상한 그녀>의 시간 여행은 매우 자연스럽고 전혀 고민이 없다.그야말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시간의 역류를 향하여 영화는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모두 다 오말순 (나문희)의 오두리(심은경)을 향한 변신을 매우 행복하게 매우 당연스럽게 매우 다행스럽게 받아들인다.시간의 비틀림에 수반되는 그 어떤 고민도 이의제기도 없다.뭐..그럴 수도 있다.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재미를 위한 영화에 이런 트집을 잡는 것도 사실은 어느 정도 촌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일도,어설픈 안무에 맞춰 길거리에서 옛날 가요들을 불러서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는 일도,멋진 왕자처럼 생긴 방송국 PD의 구애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도,트집거리가 아니다.다만 이 모든 일들이 정말 '천연덕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천연덕은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한계를 드러낸다.피가 등장하는 것이다.두 가지 피.하나는 혈액 그 자체.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손자를 위한 수혈.수혈의 보답으로 돌아오는 노쇠에의 복귀.(영화 만든 사람의 종교적 성향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수혈을 거부하는 어떤 종파에 소속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수혈에 대한 거부반응이 이런 형태의 영화 내러티브로 발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두번째는 핏줄이란 의미에서의 피.세월을 거슬러 젊은 육체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되는 모성애.시간을 이겨낸 핏줄의 인력.

 

이 모든 예측가능한 피의 힘들이 그런대로 유지해오던 천연덕스러움을 가없이 흔들어버린다.한계는 연애와 사랑에서도 드러난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오말순에게 영화는 미남 왕자와의 찐한 로맨스 하나 허하지 않는다.조금 더,조금 더..하는 관객의 기대는 아랑곳없이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머무르고 영화는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인 것처럼 결론짓는다.도대체 그동안 유지해왔던 천연덕스러움.- 시치미를 뚝 떼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던 그 태도- 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왜 오두리에게 약간의 해방공간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이거..사실 너무 하는 거다.

 

천연덕의 한계는 너무 극명하게 테두리지어진다.물론 이 한계는 관객의 명랑한 천연덕스러움을 끝까지 유지시키려는 일종의 '방법'이었을 테고,이 한계를 벗어나면,막장이니 윤리니 뭐니 하는 각종 비난을 사지 않을 수가 없긴 했을 것이다.그래서 뭐..이해하자.그냥 나 혼자만의 투덜거림 정도로 해 두자..

 

그러나 김수현..남자 노인이 꽃미남으로 변신한 김수현은 어찌 될 것인가.나는 만약 주인공이 심은경(여성 노인)이 아니라 김수현(남성 노인)이었다면,결말이야 같았겠지만 (김수현 역시 수혈의 단계를 거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적어도 뽀뽀가 아니라 키스 정도의 장면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우리,그러지 말자.할머니들에게 로맨스의 자유를 허하자.영화라는 판타지 안에서야 얼마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후편을 제안한다.제목은 <능청스런 그녀>,<뻔뻔스런 그녀>,<천연덕 할머니>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