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2013년의 영화들 10.<또다른 영화들에 대한 메모>

폴사이먼 2013. 12. 30. 15:49

그리고 2013년엔 또다른 영화들이 있었다.전부 다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리뷰를 쓰기 위해 작성해 두었던 메모로 대신한다...

 

비포 미드나잇(리처드 링클레이터)

 

 

바람과 비에 씻기고 바랬지만 대신 오랜 시간의 숨결들을 간직한 그리스의 유적들처럼,제시와 셀린느의 사랑 역시,그들을 둘러싼 현실과 그들 사이에 누적된 과거의 공격에도 여전히 훼손되지 않고 그 형태를 달리 한 채,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현상 속에 숨겨진 본질은 예전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공간의 진행 (그들의 걷기) 과 쉼없는 말들을 통해 서서히 관객들의 기억을 깨운다.시간과,기억과,그리고 사랑에 관한 영화...

 

그리고..1.레지던스 식탁에서의 몇몇 명징한 사랑과 시간에 대한 대사들 때문에 거의 행복해졌고 2.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기분이 드는 에단과 줄리는 거의 친구처럼 느껴졌고 3.변해버린 외모와 몸매에 전혀 굴하지 않고 옷을 벗을 수 있는 줄리 델피의 인문학적 배짱에 박수를 보냈고 4.또 나중에 그들이 before the dawn 을 찍게 될 것 같았고...

 

문 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

 

 

 

웨스 앤더슨을 제쳐놓고 보더라도,1)탈주가 근간이 되는 사랑의 아나키즘  2)예쁘고 따뜻한 화면  3) 물과 숲  4)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음악들  5) 그리고 틸다 스윈튼..도저히 좋아하지 아니 할 수 없는 영화라 하겠다.사랑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려질수록 더 과감해지고 순수해진다.그러니까..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도망이다..

 

노련한 배우들의 하모니..그리고 여주인공 수지로 나오는 배우..이 친구 뜬다..틀림없이..매우 영리한 배우다.

 

마지막 4중주

 

올해 최고의 하모니 연기를 보여준 영화.최고,최고,최고다..

 

빅 픽처(로망 뒤리스)

 

 

 

 특별히 좋은 영화도,영화사에 남을 걸작도 아니다.그러나 이 영화는 내 심장 뒷쪽의 어느 부분,두뇌 안쪽에 내장된 기억 어느 부분을 거의 직격탄처럼 건드렸다.내 본능이 이 영화에 반응했으며,로망 뒤리스의 소심함과 그의 슬픔과 그의 실종 궤적을 보는 내내 소주가 필요하다 싶었다..

 

실종이라는 개념의 수많은 층위들 중에서,자신의 내부를 비우는 공이나 허의 개념 보다는,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 육체와 연결된 존재 양상이 직접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실종이라고 나는 생각해왔었다.그러나 그런 생각은 일부분 위선이고 위악이었으며 데코레이션이자 포장이었다.결국 현실과 운명이 존재의 변환을 강제하는 것이고,진짜 존재의 실종은 그 실종 과정 안에 내재해 있는 매우 정서적인,거의 슬픔에 가깝다고 해야 할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이었다...그랬다.

 

이 영화와 함께,또다른 2013년의 영화 하나가 내 과거의 경험 자체를 건드렸다.

 

온 투어(매티유 아말릭)

 

 

내게는 너무나,너무나 특별한 영화였다.내 과거 어느 한때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기억의 밑바닥에 놓여있던 어느 시간대를 가감없이 퍼올려대는 그런 영화였으니까.보는 내내 10년 너머의 어떤 영상들이 자꾸만 떠올라와서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극장에게 고마워질정도...그리고 알았다,그 때의 무대들이란 죄다 벌레스크,뉴 벌레스크였다는 사실이..

 

솔직한 능구렁이인 매티유 아말릭은 개인사와 과거와 사랑과 가족이 얽힌 드라마와 신나는 음악과 쇼가 기본이 된 무대를 정신없이 교대로  들이민다.종내에는 삶의 쓸쓸함 자체를 파고 들게 되는데,그는 이런 내적인 진격에 거의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장인적 기질을 발휘한다.쇼는..무조건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난니 모레티)

 

 

 

아마 황산벌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 아버지 나,이렇게 셋이서 본 영화였던 것 같다.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인 두 분과,또 두 분 사이,그리고 소위 가나안 신도인 나는 영화 본 이후,중국 음식점에서 가벼운 삼각전투를 벌였다.시인이 꿈이었던  아버지가,잊혀졌던 꿈을 찾아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노인의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평하실 때까진 그런대로 괜챦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신의 무오류성을 얘기하며 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어머니는 추기경들의 배구 시합 장면은 엄청 좋아했지만,교황으로 내정된 미쉘 피콜리가 연기하는 추기경이 설교 연습까지 한 뒤에도 교황직을 버린 것은 신의 그릇된 선택(그를 교황으로 선택한 분은 어쨌든 신이 아닌가..)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강변했다.내가 신은 인간의 문제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신을 인격적 특성을 가진 존재로 상정하는 기독교인들의 성향이 일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반격하자..그만 식탁이 시끄러워졌었다..

 

신의 소녀들(크리스티앙 문주)

 

 

 

영화 속 갈등을 차근차근 쌓아올려 박진감 넘치는 최후의 지점을 향하게 하는 크리스티앙 문주의 역량과 배우들의 놀라운 컴비네이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문득 성경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얘기가 생각났다.왜 현대의 종교적 목자들은 그 양을 찾아서 한사코 자신의 우리로 데려오려고만 하는가.왜 문제의 양에게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고 싶은 거처에 대한 소망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가.사실..나머지 99마리 양들은 목자 없이도 길만 잘 찾는데 말이다.

 

그러나 종교의 폐쇄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생각하면 재미 없다..그리고 어쨌든 종교를 다룬 영화를 꼭 일 년에 한 두 편 정도는 보는 모양이다.내년엔 다시 종교에 대한 영화를 쭉 보기로 한다..

 

카운슬러 (리들리 스콧)

 

 

 

 

어쩌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라기 보다는 시나리오를 쓴 코맥 맥카시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코맥 매카시 특유의 무목적적이며 무작위적인 광대한 악의 세계가 인물들의 지근거리에서 너울대며 끔찍하게 펼쳐지는 것이다.거친 양념 같은 단호한 폭력과 욕망의 단면들이 바닥까지 벌거벗은 캐릭터들과 어울려 지옥도를 그려낸다.

 

카메론 디아즈는 성공했으나 페넬로페 크루즈는 다소 우울하다.디아즈와 마이클 패스빈더가 입은 아르마니 옷이 눈에 확 들어오며 ..무엇 보다 매카시의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보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그의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정체성을 감추며 벌이는 롤 플레이와 대도시 특유의 익명성에 기반한 스치듯 가벼운 사랑(그러나 어쨌든 매매춘)은,정반대 방면으로부터의 역풍을 맞으며 침몰과 파멸의 위기에 처한다.키아로스타미가 굳이 맨 모습의 나락이 비춰보이기 전에 엔딩을 선언하는 이유는 어쩌면 사랑,그리고 엘라 피츠제럴드 의 노래에 대한 경의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삶은 영화 대사처럼 '어떻게든 되는 것'이 아니다.삶은,또 사랑은,사랑 조차 때론 위험하고도 위태롭다..

 

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

 

 

 

 제목에 '러브' 가 들어갔다고 해서 사랑 영화인 것은 아니다.콘지 다리우스의 카메라의 유려한 패닝이 우아한 로마 광장의 모습을 훑고 있다고 해서,저절로 로맨스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이 영화는 사랑이 아닌 '안티 사랑',예술의,관계의(특히 사랑이라 이름 붙인 관계),인기의,현대 대중 문화의 ,덧없음에 대한 우디 앨런식 변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의외로 깊고 복잡한 영화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앨런은 예전처럼 시니컬하지도 않고 특유의 신경증적 증상도 덜하다.유럽 마운드 위의 그는 충분히 위트가 있지만,현란한 변화구 대신 묵직한 직구들을 포수 미트 곳곳으로 찔러넣으며,자신의 모든 테마들을 요리조리 요리하고 스스로의 영화 인생 마저 패러디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자유로워졌다.배우들 역시 우디 앨런 특유의 자기장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이 영화 안에서의 알렉 볼드윈의 캐릭터는 혹시 유령이 아니었을까..살아있는 인물이기는 한 것일까..

 

장고:분노의 추적자 (퀜틴 타란티노)

 

 

 

그야말로 tarantinistic film.피와 살은 여전히 허공으로 튀고 뻔뻔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영화적 효율을 잃지 않는 캐릭터들의 블랙 유머는 예나 다름 없이 작동한다.타란티노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면 지구상의 0.004%의 인구 중 14.44%가 슬픔에 잠길 거다.(응?)

 

타란티노 영화에서 음악은 완전히 별개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