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에 관하여 PART3.<명예훼손의 또다른 양상들>
5.어느 아파트 주민들의 경우.
명예훼손은 정치인들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 만의 전유물 같은 단어가 아니다.그들만 '명예'를 가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어쩌면 과거에는 그랬을런지 몰라도 이제는,사회각계각층에서,분쟁의 해결양상과 방법으로서 명예훼손이 떠오르고 있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혹시 법원에 가 보신 일이 있는가? 자기 자신이 소송의 당사자만 아니라면 법원처럼 흥미로운 장소는 이 세상에 별로 없다.갖가지 쟝르의 영화가 동시상영되고 있는 것이다.(원래 싸움구경이라는 것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그렇지 않다면 그 수많은 스포츠 종목들은 탄생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법원의 주요한 방청객이었던 때는 대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어설픈 마초들처럼만 보이는 같은 과의 선배들이나,술 마시고 노는 일 이외에는 별로 잘 할 줄 아는 게 없어보이던 동급생들이나,지성적인 분위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알고 보니 아카데미라는 말의 원래 의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던 학교를 몹시도 싫어 했던 그 당시,나는 학교로 가는 대신 법원으로 출근하곤 했다.(어쩌다 늦잠을 잔 날에는 아마츄어 야구 경기를 보러 야구장 스탠드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인생들을 발견했다.아이의 팔을 담배불로 지지고서도 반성의 눈빛 하나 보이지 않던 엽기적인 엄마 피고와,회사간의 다툼을 자신의 운명적인 전투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싸움을 벌이던 변호사 아저씨들의 모습과,그런 두 사람의 호들갑을 여유있게 진정시키던 판사의 모습 들에서,난 참 여러가지를 배웠었다.
그해 난,지금은 대전에서 마취과 의사로 살고 있는 친구녀석의 엄호(물론 대리출석이다) 아래,시험 때를 제외하곤 법원에서 내 주된 일상을 수행해 나갔었다.법원의 구내 식당이 내 식당이었고 수위 아저씨들과는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로 발전했다.또 그해 난,살인과 사기와 성범죄와 강도 사건을 보았고,기업 간의 암투와 개인 간의 잡다한 민사소송,시국 사건의 비극적이면서도 모순에 가득 찬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를 죄다 보았다.그리고 그 시절 난,학교와 책에서 배웠던 모든 것 이상을 법원으로부터 배우고 깨우쳤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가르침에서 이상하게 제외되는 즉물적인 것들,가감없이 펼쳐지는 욕망과 잔인함,인간의 저열한 본성과 터무니없이 고결한 영웅적인 심리들,인간 사이의 관계들 속에서 파생되는 비전형적인 에너지들을,나는 재판정의 엄숙하면서도 청결한 공기 안에서 배우고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보았던 재판들 중에 명예훼손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기억을 쥐어짜 보았지만,아무리 돌리고 비틀어봐도 법원에 대한 내 기억의 데이터 베이스 속에 명예훼손사건은 보이지 않았다.20세기 사람들에겐 명예라는 개념이,21세기의 사람들 보다 더 비중이 없었던 것일까?
나는 홀로 이리저리 궁리해 보다가,급기야 지금 아주 잘 나가는 판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점쟎은 선비형인 녀석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서 '명예훼손사건'에 대한 뜬금없는 질문을 퍼부어대는 나를 천천히 참아내다가,명예훼손에 관한 고소고발이 폭증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며,상습적인 명예훼손 고소꾼만 해도 전국에 여러 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그만큼 개인들의 스스로에 대한 보호의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녀석은 썰렁한 농담을 덧붙였다.
우리는 다음 달의 술 약속 - 우리가 가는 술집은 20년째 일정하다 - 끝에 전화를 끊었다.그와 동시에 나는 처남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어느 고소고발사건 역시 명예훼손 케이스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기러기 아빠로서 밤마다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나,하는 나답지 않은 걱정을 하면서,알려진 수다꾼인 경비 아저씨에게 대화를 시도한 끝에,우리 아파트의 주민들인 어떤 60대 남성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송사에 대한 대강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발단은 아파트 관리비 문제였다.주민들 중에 야당세력을 자처하는 두 명의 은퇴한 교사들이,관리비를 마음대로 전용하고 관리소장과 부정한 결탁을 자행했다며,말하자면 아파트 내의 여당인 일부 주민들에게 시비를 걸었고,이 시비는 말다툼에서 폭언으로 심지어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야당은 여당의 부정에 대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고 탄핵을 위한 주민비상총회 역시 도저히 정족수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초라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들의 비분강개는 결국 대낮의 술주정이나 집기 부수기로까지 이어졌고,잠자코 무시로 일관하던 여당 역시 이제는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어져서 아파트의 다른 중립적인 주민들에 대한 선전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양측의 전쟁은 이제 그들의 아내들에 의해 뒷담화와 상호비난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아무래도 부정과 횡령이라는 엄청난 단어들을 사용했으면서도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이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기세가 등등해진 기존의 주민 대표들은 항의자들의 기세를 완전히 꺾기 위해,주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라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거기엔 정당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자신들을 향해 쓸데없는 음해와 악의적인 거짓말을 일삼아왔던 두 사람에 대한 감정적인 비난과,오해와 의혹을 받은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상처들이 여과를 거치지 않은 단어들로 묘사되고 채워져 있었다.또 거기엔 두 사람의 레지스탕스에게 결정타를 가하고,대다수의 주민들과 그들을 격리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가 드러나 있었다.
(물론 이 사진은 이 글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오해하지 마시라..)
그러나 저항의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게다가 이 유인물은 오히려 저항자들의 투지에 새로운 동력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야당은 욕설과 항의,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송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즉 두 사람의 전직교사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문건에 서명한 열 명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던 것이다.특히 두 사람은 '이런 선생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대목에 가장 분노했었다는 것이 경비 아저씨의 귀띔이었다.그러나 고소는 또 맞고소를 이끌어냈다.애초에 비난 유인물을 돌린 것은 바로 항의 세력인 두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측은 경찰서를 연방 들락거리며 서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수위 아저씨는 목격자이자 제3의 세력으로서,또 어느 면으로는 국외자로서의 몇 가지 코멘트를 더했다.그러나 나는 벌써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그것은 명예훼손에 관한 재판이 실제로는 '명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었다.소송은 그저 상대방에게 망신과 타격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법정과 법 조항은 소통 불가능성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있었다.정당한 비판과 근거 없는 비난 사이의 구분은 매우 무의미해졌으며,사회의 주력을 구성하는 인사들 못지 않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이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명예훼손이라는 법 조항 자체의 정당성 조차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결함이 사라진 사회,법 만능주의에 물든 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고,이제 법은 군림하면서 이용당하는,지배하면서 지배당하는 테크니컬한 도구로 몰락해가고 있었다.
6.어떤 전직 교수의 경우
반면 이와 근본적으로는 똑같지만,상황은 좀 더 심각할 수 있는 사안이 우리나라의 상층부를 구성했던,또는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다.몇 년 전 한국 사회를 혼란과 분열 상황에 빠뜨렸던 황우석 전 교수의 이름도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거론되기 시작했는데,그것은 불행히도 그의 연구와 관련된 어떤 채무,그리고 그에 이은 사기 사건이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316185200§ion=03
우리의 황교수님은 무언가 거대한 프로젝트를 (매머드를 복원하겠다고 했던가 ,뭐 그런 것이었다.암,매머드 정도는 되어야 있어 보이지..) 위해 그의 지지자로부터 투자를 받았었고,그 돈이 그의 팬들에게 제때 상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다.(그러나 이들 사이에 오갔던 금전 거래의 형태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황씨를 사기범으로 모는 것 또한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돈을 반드시 갚기로 하고 빌려준 것이 아니라,투자의 개념이 - 당연히 반대급부가 보장되는 - 섞여들어간 돈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물론 투자와 채권채무관계의 상황이 혼재했을 수도 있고,황씨의 브레인들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조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
나는 이러한 치사한 상황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다만 황우석 쪽의 어떤 대응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황우석 지지자들의 다음 카페에,그에게 피해를 당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그들과 황씨 사이의 돈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일들을 적시하는 글을 계속 올리자,글들이 계속 삭제되기 시작했고,급기야 황씨의 측근 -스님이라는 그는 돈을 받은 것은 황우석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강변하기 시작했다.매우 법적인 제스추어이다 - 이, 그 글들이 자신과 황우석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포털 쪽에 접근금지 처리를 요청하여 받아들여진 것이다.
(뭐,이렇게 되었다.이 공간의 이름은 하필 황우석 '광장'이다)
문제제기와 비판에 반응하는 이런 태도는 지난 달에 내가 처했던 상황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즉 이제 유명인들 사이에는 어떤 패턴이 생겨난 것이다.사회지도층이든 종교인이든 과학자든 아파트 주민들이든,명예훼손의 법적인 이용을 범국민적인 스포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에게 논의를 국한시켜 보면,몇 가지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이들은 우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라는 이 새로운 신공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다.그들은 현대의 목격자들의 기억력이 대단히 나쁘다는 것,그들의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잠깐의 시간만이라도 벌 수 있다면 또 비판적인 글들의 전체적인 양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면,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현대라는 시간대에 대한 나름의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고 득의만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망각을 향한 책동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와 권위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인터넷의 기본,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기록물로서의 인터넷의 속성을 그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인터넷 기사의 완전한 삭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인터넷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니 비판에 대한 그들의 인내심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되었고, 모든 비판에 '긴급조치'라는 철퇴를 휘둘러댔던 원조가카의 시대를 심하게 그리워하는 것 또한 정상적인 사고의 연쇄작동과정이 되었다.그렇다.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유전자 역시 면연히 흐른다.면면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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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몇 개의 질문.
그러나 여기서 이런 식으로 글을 끝맺을 수는 없다. 명예훼손을 입에 재갈 물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만을 다루는 일은 사실 허망하다.그러기엔 내 노력과 시간과 인터넷 위의 내 공간이 너무나 아깝다.다른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또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질문 하나.첫번째.명예훼손죄라는 이 작디 작은 법률은 이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모욕죄나 허위사실유포죄 정도로도 시민들 사이의 법 감정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변형되고 모욕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한 것은 사실 그 법 조항이 아닐까?
그 다음 질문.보호되어야 할 명예가 따로 있는 것일까? 권력과 힘을 갖춘 사람들은 명예훼손이라는 이 법 조항을 통해 자신들의 명예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자신들에 대한 험담이 공공의 작은 담벼락에 낙서되는 꼴 조차 못 보는 것이다.그러다보니 힘없는 시민들 조차 그런 일을 따라 하게 되었다.그러니 진정으로 보호되어야 할 명예는 무엇인가.과연 그런 명예가 있긴 있는 것일까?
나는 21세기 우리나라가 고결함을 잃은 사회라고 생각한다.지난 10년간 그런 얘기를 주구장창 써 왔다.돈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게 되는 상황을 지켜봐 왔고,행복 역시 돈과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이데올로기화되고 선전되는 과정을 목격해 왔다.돈이 고결함을 대체하는 것이다.그렇다면..명예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권력과 법의 보수적인 적용으로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싸구려 장난감 같은 대리인들을 내세워 비판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그들은 자신의 명예를 법과 돈으로 지킨다.이것이 과연 명예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답에 대한 질문.다음 글로 미룬다. 명예와 관련된 영화 하나를 끄집어내어 설익은 대답 몇 개를 시도해 보려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