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

2천 년 동안의 고독-예수,수난을 당하다

폴사이먼 2011. 7. 26. 14:52

기독교의 진짜 교리는 십자가 위에서 시작한다.십자가를 정점으로 한 일련의 수난극이 없었다면,기독교는 현재의 융성한 종교형태의  첫 발걸음을 떼기도,열혈 신도들로 이루어진 초기의 핵심적인 지지층을 형성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죽음을 향한 십자가에서의 고통스러운 여정과,그곳에 매달려 사형당한 예수의 죽음에 대한 강력하고 단순한 해석들과,그 종교적인 열광에 대한 신도들의 감정적인 동일시,그리고 그 동일시가 가져다 준 피안의 세계에 대한 역설적인 희망,또 현대의 신도들이라면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을 -예수의 죽음을 따라하고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기반이 된 -순교 퍼포먼스의 폭발성이 초기 기독교의 강력한 결속력과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었을 정서적 파괴력을 형성했다.예수의 수난극은 기독교 교리의 절반의 핵심이자 성공의 비밀이었다.

 

기독교는 매우 단순하게,마치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양 십자가 위의 사건과 예수의 수난극을 교리화했다.예수가 로마 당국에 의하여 당해야 했던 일련의 고문극은 사실,권력에 의해서 처참한 폭력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가능성이 있었던 새디즘을 동반한 고문극이었지만,기독교는 예수를 그런 종류의 피폭력자들의 대표자로 자리매김시켰고,거기에 유대교 특유의 메시아니즘을 결합시킴으로써,인류 전체의 구원을 향한 퍼포먼스로 십자가 수난극을 격상시켰다.말하자면 예수의 수난은 거대한 상징이 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자기 자신은 완전히 무고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예수는 인류 전체의 죄를 짊어지고 상징적 살해를 당함으로써 인류의 죄악을 대속했다고.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사와 종교사의,그리고 전체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이런 사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인간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힘주어 말한다.물론 이것은 완전히 유대교적인 사고방식이다.이 얘기에는 신께 주기적으로 바쳐지는 제물이 인간의 죄를 일정 부분 씻어줄 수 있다는 유대인들의 (또 고대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오래된 종교적 패턴이 전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런 식의 매우 간단한 구원의 방도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해명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무엇보다 왜 우리가 원천적인 죄인의 딱지를 붙이고 있는지 이해하기 조차 어렵다.정말 그렇다.당신은 왜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죄인의 굴레를 쓰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죄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죄인 보다는 오히려 수인(prisoner)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자기 자신의 정확한 죄명도 잘 모르면서 갇혀있는 죄수 말이다.도대체 우리 모두를 죄수로 만들어버리는 죄악이란 어떤 종류의 죄악일까.

 

우리는 연쇄살인범도 아니고,심각한 절도나 폭력을 저질러서 연행된 현행범이 아니다.우리가 저지른 죄는 고작해야 마음 속의 욕망에 불과하다.'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순간적인 욕망,그리고 그것을 가끔씩 노골적으로 드러낸데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기독교는 죄의 기원의 일부를 이런 종류의 욕망에서 찾는다.욕망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선언함으로서,원초적인 죄악인 욕망을 죽음과 연결시킨다.

 

그렇다.키워드는 사실 죽음이다.시작 역시 죽음이었다.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우리가 원하지 않는 당연하지만 완전한 수멸에 대한 두려움,그 근본적인 불안을 마주해야 한다는 우리의 운명을 기독교는 죄악과 연결시킨 것이다.그리고 불안인 죄에 대한 근원적인 부채를 탕감시킨 사람이 십자가 위의 예수라고 그들은 얘기한다.다시 말해 우리의 존재 자체는 원래부터가 용서받지 못할 부조리함 속에 놓여있었고,그 결과 우리는 낙원으로부터 - 낙원의 성격은 다시 처음부터 규정되어야겠지만 - 추방된 존재이며,그것이 우리가 현재 마주한 심원한 불안감의 이유라는 것이다.기독교는 그 불안감을 '죄'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표현했고,그 격리감의 도형적 괴리감을 십자가라는 한 방의 변수로 해결했다.이것이 그들이 인류 전체의 죄악 -정확히 말하자면 소외감 -을 파악하고 처리한 방식이다.

 

물론 어찌 보면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천재인 사도 바울의 창작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그의 철학적 토양과 지적 기반은 상징과 상징들을 능숙하게 연결시킬 수 있었고,차라리 그가 예수 죽음의 직접적인 목격자가 아니었기 때문에,그는 이런 종류의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봉합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그의 해석과 창작 능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 채로 발휘되었다.

 

그러나 당신은,21세기를 살아가는 당신과 또 우리는,이 극적인 얘기들과,또 얘기보다도 더 극적인 해석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근본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소외와 불안을 죄라는 단어로 바꿔칠 수 있는가? 설사 우리가 우리의 유죄성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고작 한 나절 동안에 벌어졌던 한 청년의 죽음이라는 우연적 에피소드들을 통해,당신 존재의 근본적인 소외의 문제 -그러니까 역시 '죄'의 문제 -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이건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닐까? 아무리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도 -나는 이럴 때 자동적으로 전두환을 떠올린다.물론 이건 내 한계다 - 예수가 행했던 2천 년 전의 퍼포먼스의  의미를 믿기만 한다면,천국을 향한 계단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지은 죄악에 대한 용서와 의미가 똑같은 불안의 해결을 해방과 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얻을 수 있다는 것,이런 사상 최고의 단순논리를 ,당신은 정말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전두환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믿기만 한다면.)

 

이것은 어찌 보면 큰 혼란을 야기한다.희생 제물과 예배의식이라는 유대교적인 요소가 너무 간과되었기 때문이다.누구나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미심쩍은 함정적 설정은,이 설정 자체가 유대교의 희생제의와 강력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었다.유대인 특유의 실용주의적이고 상업적인 종교관 -신,제물,예배자를 간명한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킨-이 큰 힘을 발휘했고,이 단순한 구원관의 어떤 특성이,인류 정신사의 어떤 뻔뻔스러운 편의적인 시각과 정확히 합치된 것이다.

 

명시적으로 얘기하자면 십자가 위의 예수가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감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위로 정도야 가능하겠지만.그것은 그냥 명목상의 교리일 뿐이고,그것이 우리의 거듭남 -여기서 우리는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도 바울의 천재적인 언어 조탁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근본적으로,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들었던 어느 인상적인 죽음 -그러니까 예수의 죽음 -을 개죽음으로 만들기 싫다는 우리의 기초적인 계산능력과 상관이 있고, 예수의 죽음을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고통들을 외면할 수도 있겠다는 가장 위선적이고 심하게 오만한 의도와도 상관이 있다.예수는 물에 빠져 곤란한 당신에게 갑자기 던져진 강력한 지푸라기인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의 여부를 떠나서,만일 십자가 위의 예수가 그냥 착각한 거였다면,그의 죽음은 그냥 그 자신의 죽음일 뿐이고 인류 전체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지 않겠는가? 예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해야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벌써부터 예수를 포기하지는 말자.가장 중요한 그의 밤,그 죽음의 밤을 거칠게나마 재구성해보아야 한다.그 밤은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물론 이 기록들은 방송 드라마 못지 않은 극적인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 - 예수는 체포된 그 날 낮에,권력과 기득권층의 심장이라고 할 만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난동을 부렸다.종교적 순결성으로 무장한 그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본과 금전,그리고 그들의 뒤를 보아주는 권력에 격렬하게 항의했다.이 격동적인 행위는 로마와 기존 종교권력에 대한 염증 그리고 '메시아'라는 유대교 특유의 상징적 해결점과 맞물려 강한 임팩트를 생산했다.

 

당연히 예수는 권력의 타겟이 되었을 테고 살해의 표적으로 떠올랐을 것이다.그는 강력하고 폭력적인 권력에 대항했고,조금이라도 눈치가 있었다면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아마 예루살렘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길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도망치지 않았다.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그 자신 최후의 종교적 행사를 하러 가기 전에,마지막 만찬을 베풀며 유언장을 작성하듯 말들을 쏟아냈다.그리고 스스로가 택한 죽음의 길로 향한다.

 

왜 그는 도망치지 않았을까? 왜 그는 현대의 덜떨어진 자신의 후예들처럼 정치권력이나 자본이나 세속적 권위들이나 심지어 인터넷 위에서 암약하며 한심한 말들을 쏟아부으며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건가.왜.

 

왜,그는 그냥 죽는가? 그러나 스스로 택한 이 길위에서 기독교는 태동한다.이 강한 죽음에의 경도 속에서,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똑같은 죽음의 길 - 그들은 그것을 순교라고 불렀다 - 을 선택했으며,탄압과 핍박이 거듭될수록 더 강력한 내적인 동력과 부피를 획득했다.한편 그 길은 영혼과 지식과 내적인 성취와는 다른,소멸되고 말 육신에의 집중이었으며,눈에 보이는 육체적 고통을 선택하고 적들의 눈 앞에 그 고난을 전시함으로써 궁극적인 전리품들을 획득했다.물론 그것은 추종자들만의 몫이었지만.

 

그러나 예수의 의도만은 여전히 궁금해진다.단순한 종교적 열광이자 자기 신념의 무지막지한 성취 때문이었을까? 또 그는 실제로 자기 자신이 인류 죄악의 대속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걸까?

 

우리는 예수의 정확한 의도를 추측할 수 없다.검증할 수도 없다.자신은 신의 아들이며 자신의 죽음이 인류 전체를 구원할 것이라는 강렬한 믿음 아래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고,또 어쩌면 그가 생각한 자신에 의해 구원가능한 범주의 인류가 '유대인' 뿐이었다고 믿으며 죽어갔을 수도 있다.분명한 것은,그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과,그의 죽음이 어떤 열정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의 젊은 나이와 이런 극적인 설정들은 이 결정적 장면들에 엄청난 박력을 부여했다.그리고 이 순수한 죽음이 곧바로 종교적인 믿음으로 전화한 것이다.기독교는 이 얘기를 극적인 수난극(passion)으로 발전시켰다.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극심한 탄압 아래에서 이 열정적인 드라마를 글자 그대로의 passion(열정)으로 흡수했고 말이다.수난극은 그들을 완전히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결사적인 결사체를 만들게 했다.

 

또한 기독교는 이 얘기를 유대교의 종교적 기념일과 연결시켜서 예배의식과 절기를 형성했고,그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시기들을 재구성했다.현대에도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오순절 감사절 등의 절기를 만들어서 매우 조직적으로 그들의 신을 시스템화하고 거의 생활화된 종교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실제적인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지만,예수의 수난극은 이렇게 종교적인 상징과 중요한 예배의식들로 자리잡았다.여기에 성직자들의 절대적인 권위를 결합시키고 평신도들을 그들 밑에 제도적으로 놓아두는 수직적 상하관계의 교회 제도를 확립함으로써,그들은 매우 효율적이지만,근본적으로는 지상의 권력과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적어보이는 그들의 '교회'를 완성했다.예수의 수난은 결국 교회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육체성에 대한 날카로운 경도였다.죽음과 고문으로 얼룩진 예수의 수난극에서 그들은,지성과 마음의 평정을 배제했다.예수의 육체를 향한 그들의 격동적인 열망은 정신의 고양이나 공동체의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정신 보다는 육체,영혼의 풍성함 보다는 육체적 증거들이 우선시되었다.따라서 기독교의 역사가 지속될수록,정신성을 대표하는 세력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갔고,성직자들의 권위에 힘입은 교리문답과 신도들의 육체적 행위들을 규범화하는 통제를 통해 그들의 종교제도는 조직화되어갔다.

 

그러나 예수의 수난과 죽음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그 정도의 임팩트로는 온전한 종교 논리를 형성하기가 어려웠다.모든 종교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달콤하면서도 결정적인 전망을 선사해야 하는데,기독교의 경우,그것은 부활 (resurrection)이었다.그리고 이 부활 역시 많은 부분에서 '육체'적이었다.확실히 대중에게 육체는 정신보다 훨씬 희망적이고 매력적인 것이었다.한편 기독교의 이러한 선택은 그들의 향후 2천 년을 완전히 좌우할 정도의 중요한 선택이었고,인간의 역사발전과 보조를 맞춘 절묘한 선택이었다.그러나 그 와중에 예수 삶의 가치가 일부 실종되었고,거의 절반 정도의 예수 모습이 또 한 번 고독 속에 유폐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