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s & Bones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1.
1964년 이탈리아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예수를 완전한 신으로,그러면서도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 그리고 농민들의 편에 선,신성을 타고 난 신의 아들로 그렸던 것에 반해,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폴 슈레이더가 각색하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1988년의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예수를 거의 철저한 인간으로 바라본다는 전제를 가지고 영화를 진행시켜 간다.
파졸리니의 예수가 고고한 신성의 지평 위에서 거룩한 신성을 유지하며 감정반응 조차 자제했다면,카잔차키스와 스콜세지의 예수는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또 두려워하며 걸핏하면 슬픔과 절망에 잠긴다.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신으로서의 길에서 일탈하고 그 길 자체를 의문스러워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우쭐대기도 하다가 결국 인간과 신 사이에서 기로에 서게 된다.그들의 예수가 맞이한 최후의 승패가 어떠했든 간에,스콜세지와 카잔차키스가 예수를 인간으로,인간적 심성을 가진 존재로 그렸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우리는 당연한 의문 하나를 가질 수 있다.예수의 인간적 레벨 중 육체 자체에 대해서이다.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라는 예수,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었다는 예수의 육체 역시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아니,혹시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유전학적 기초 위에서,세포생물학적 기반 위에서,또는 모든 과학을 초월한 층위 위에서,그는 우리 인간과는 다른 물리적 법칙과 화학적 조성에 따라 그의 삼십 년 남짓한 삶을 이어갔었을까?
그러나,가령,부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실 중 하나.예수는 지상에 살아있었을 때,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했다.그렇다면 그의 말에 사용된 육체기관들,입과 혀와 구강의 구조와 성대의 떨림과 사용해야 할 단어들을 취사선택했던 그의 두뇌회로들은 우리 평범한 인간과는 뭔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예수 역시 우리와 똑같은 신체적 메카니즘을 통해 발성하고 말을 했을까.어느 쪽일까.나는 단연 후자 쪽이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시,또한,그는 떡을 먹었고 포도주를 들이켰다.그의 식도와 위와 대장이 우리들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면 ,그가 먹은 떡가 그가 마신 포도주는 정상적인 생리학적 과정들을 통해 아래로 아래로 움직여갔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출구에 당도했을 것이다.그렇다면 당신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있는 예수를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그를 신으로 받드는 열혈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당연히 치루어내야 했을 생리작용과 아울러 그가 보여주었을 수도 있는 신체증상들,가령 신트림이나 방귀,콧구멍 속의 코딱지 혹은 그의 머리카락 속에 있었을지도 모를 비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설마 이런 생각 조차 신성모독이라고 가정하고 있을까?
행여 그렇진 않겠지만 예수의 방귀나 예수의 트림을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오 화 있을 찐저,혹은 복 있을 찐저,그대들의 모든 신체증상 -변비나 무좀까지 포함한 - 들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기를,그래서 그대들의 신께 보다 지저분한 모습으로,보다 병균에 물든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어차피 그대들의 신은 베스트 닥터에다가 신유의 권능으로 똘똘 뭉쳐진 수퍼맨이나 마이티 마우스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스콜세지의 예수는 단순한 전능함으로 무장한 수퍼 전사가 아니다.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아마 그는 정기적으로 똥을 쌌을 것이다.물론 '인간'이라는 전제를 육체적 기능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어리석다.인간에겐 정신이 있고 마음이 있다.영혼의 격렬한 파동이 있고 오류와 무지,그리고 결정적인 욕망들이 있다.스콜세지가 예수를 인간으로 그려내려면 인간의 이런 모든 특질들에 골고루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그러나 그 모든 인간적인 면모들을 모두 다 영화 속에 쏟아붓기는 좀 어려웠으므로,스콜세지는 몇몇 한정된 특징적인 부분들에 영화적 포커스를 집중시켰다.
그것이 hearts와 bones이다.육체와 욕망 같은 인간적 특질을 강조하는 bones와 내면적 정신과 영혼의 양상을 상징하는 hearts라는 단어는 원래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마틴 스콜세지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21세기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인 미국의 가수 폴 사이먼이 말한 단어이다.1982년 폴 사이먼은 그의 앨범 <Hearts and Bones>를 발표하는데,평론가들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대중들의 환호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던 그 앨범의 동명 테마곡이 바로 Hearts and Bones이다.
(40대 초반 나이의 뉴욕 지식인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디스코와 초기 록과 심지어 가스펠과 블루스까지 동원해 표현한 음반으로,이 앨범에 쓰여진 폴 사이먼의 가사들은 1980년대의 미국 지성인의 영혼에 내재해 있는 신경증적 양상을 직선적으로 표현한다)
폴은 연인간의 사랑 역시 육체 (Hearts)와 정신 (Bones)이 아울러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며,그 둘 사이의 괴리가 관계를 급격히 냉각시키고 파괴해버린다는 사실을,자신의 자전적인 스토리 - <스타워즈>의 레이아 공주인 캐리 피셔와의 실패한 결혼- 를 반영하여 노래했다.그가 이 노래에서 사용했던 단어들이 바로 Hearts 와 Bones였다.육체와 정신이라고 다소 거칠게 바꿔 말할 수 있는 이 단어들은,마틴 스콜세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예수라는 인간에 대한 표현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훗날 캐리 피셔는 폴 사이먼과의 결혼 생활을 회고하며 ,폴이 자신에게 바랬던 것은 지적인 게이샤였다고 다분히 원망 섞인 푸념을 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캐리 피셔의 지나친 약물 복용 역시 그들의 파경의 커다란 이유가 되었다)
스콜세지는 예수의 육체와 정신에 관한 장면들을 단편적으로 늘어놓고 스토리를 짜맞춘 다음,우리에게 판단을 요구했다.예수가 과연 신인 거냐고,아님 철저한 인간인 거냐고,그것도 아님 반인반신이었느냐고..또한 이 가정적 이야기들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을 통해 '실제의' 예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겠느냐는 질문까지 함께 던지고 있다.즉 이 영화에서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는 분명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는 당연하고 작은 의문제기이지만 (무엇보다 스콜세지는 예수를 결론적인 승리자로 자리매김하며 마무리지었다) ,당시의 미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반대시위와 비난여론이 들끊었다고 한다.예수가 인간이었다는 것을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섹스까지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이다.그러나 이런 스캔들을 제쳐놓고서,이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예수의 신성과 인성 사이에서,어린 시절부터 카톨릭 교도였으며 소년시절엔 성당의 복사였던 소년 마틴 스콜세지가 완전히 공정했다고 볼 수 만은 없다.스콜세지는 결국 예수의 궁극적 승리를 그려내고 있으니까 말이다.그러나 승리를 향한 디테일들 속에서,우리가 생각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