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고적한 영화도시 전주를 가다.<전주국제영화제 기행>그리고 <대결>

폴사이먼 2010. 5. 7. 11:00

평화로운 도시,전주

 

전주는 한적하고 평화롭다.과거 어떤 소송에 휘말려 전주의 법원을 찾았을 때 조차도 나는 이런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 도시의 조용한 분위기는 그 당시에도 어지러운 내 마음을 고요하게 위로해 주었었는데,그런 감성을 줄 수 있는 도시는  몹시 드물다.또 그보다 아주 오래 전,나의 소년 시절로부터의 여자 친구 하나가 일찍 전주에서 결혼해 예식장을 찾았을 때에도 나는 이 도시로부터 참 조용한 인상,마치 일요일 오전의 한가하면서도 나른한 느낌,다시 말해서 '평화'의 인상을 받았었다.(물론 전주에 사시는 분들의 입장에선 또 다를 수도 있겠다.이런 인상들은 어디까지나 우연한 여행자로서의 인상이다)

 

내게는 그런 도시,전주는 이미 10년이 넘게 국제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국제'라는 단어가 주는 거대하고 분주한 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주는 역시 국제영화제 조차도 자신의 도시 특성에 맞게 꾸려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디지털 3인3색 같은 프로그램이나 세계 유수의 시네아스트들에 대한 회고전,그리고  사회참여적인 영화들에 대한 배분을 넓힘으로써,이 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실있는 영화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영화제로서의 개성을 획득한 것이다.

 

거기에 이 도시가 가져다주는 고적하고 평화로운 인상과 전주의 정갈하면서도 풍요로운 음식문화가 곁들여지면 우리는 매우 쉽게, 떠들썩한 페스티벌이자 대도시의 백화점 같은 인상을 주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부산이 고급 뷔페라면 전주는 한옥식 식당에 차려진 한정식인 것이다.그러나 어떤 쪽이 낫다 낫지 않다를 가리는 것은 매우 무의미하며, 전주든 부산이든,나 같이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떠돌이 관객에겐,일종의 비상구이자 천연공기 호흡장치같은 것이므로 언제나 때가 오면 그 도시들로 발길을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들이 동네 친구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극장과 극장을 오가기가 매우 편리하고 따라서 영화에 대한 집중도도 상승한다.부산영화제가 해운대와 남포동으로 갈려서 조금이라도 예매 클릭을 실수하면 하루에도 두 번씩 지하철을 갈아 타야 한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이 영화제에 대한 평화의 인상은 더욱 강해진다.이 곳은 마치 커다란 공원 안에 군데군데 놓여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숲과도 같다.영화를 보기 위해 바로 앞에 놓인 숲 속으로 쑥 들어가 꽃과 풀의 냄새를 맡듯 영화를 보고 나온 다음,바로 옆의 숲 속으로 들어가 또다른 영화를 보는 것이다.그리고 그 숲과 숲 사이에 거리를 거니는 씨네필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들과 행복한 수다들,그리고 나른하면서도 정겨운 인상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이 거리는 숲 냄새 나는 공원이다.

 

나는 5월2일 일요일 전주에 가기 위해서 은별이와 아내에게 일주일간 아부가 곁들여진 재롱을 떨어야 했다.그래봤자 청소와 설거지,그리고 동화 읽어주기 또 장난감 사 주기 등에 지나지 않았으나,이것 또한  같이 있어주어야 할 일요일의 부재를 그들에게 간청하는 것이므로 꼭 통과해야 할 예의라고 생각되기도 했다.두 사람은 은근히 투덜댔지만 보통 때라면 당연히 늦잠을 자면서 침대 안에서 부스럭대고 있어야 할 내가 유난히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어대자,포기했다는 듯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90분 후,한산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하며 주차요원 jiff지기의 손짓을 보고 있었고 10분 후 나는 영화의 거리에 당도했다.영화제를 보러 가는 관객들은 대개 자신만의 컨셉이 있다.도저히 개봉 되지 않을 것 같은 아트 필름들을 챙겨보려는 사람,도시의 개봉관들 보다 일찍 개봉하는 화제의 영화들을 선택하는 사람,옛시절의 거장들에 대한 추억과 그들에 대한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회고전을 주된 타겟으로 하는 사람..영화제만 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이제 영화제 관객들에게도 개성이 생겼다.심지어 영화제 주최 측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나의 올해 전주영화제의 목표는 미클로슈 얀초와 페드로 코스타.헝가리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다.

 

 

이 감독들의 영화를 나는 거의 매번 놓쳤다.미클로슈와 코스타의 영화들은 과거 어느 때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그러나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영화를 운좋게 낚아챌 수 있는 순발력이 내겐 없었다.그래서 어쩌면 내 인생 속에 두 영화감독이 배정된 날은 2010년 5월 2일 단 하루뿐일런지도 몰랐다.그것은 인생 전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어쩔 수 없는 삶의 한계와도 유사한 일이다.물론 나는 영화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들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영화 교과서와 영화를 다룬 책들에서 그들에 대한 극찬을 읽었을 뿐이다.그렇다면 피상적인 지식으로 그들의 영화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실례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이 거대한 세상에 영화의 텍스트들은 차고 넘친다.내가 어떤 시네아스트를,또 그들의 작품 중 어떤 것을 만나게 될런지는 오직 신 만이 알 수 있다.두 감독은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나는 그들의 대표작으로 선전되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만,언제나 그렇듯 바쁜 상황이 그 영화들을 놓치게 했다.그렇다면 내가 예매한 그들의 영화 3편이 그들과의 만남 전체가 되는 것이다.이것이 영화제이고,또 영화이고,우리가 사는 세계이다.

 

미클로슈 얀초의 <대결>

 

헝가리의 미클로슈 얀초.마르크시스트이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입장을 잊지 않은 20세기의 영화 감독이라는 것이 영화제 측의 설명이다.나는 그의 이름을 많은 영화관련 책에서 읽었다.그의 영화를 다 보고 싶었으나 대표작인 <붉은 시편>과 <적과 백>을 예매하는 데에 실패했다.내가 접촉하게 될 그의 유일한 영화는 <대결>이다.

 

 

타이틀을 알리는 자막이 끝나자 헝가리의 황야가 등장하고 이어 젊은 대학생 무리가 나온다.그들은 활기에 가득 차고 어쩐지 춤추는 듯한 몸놀림으로 화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스크럼을 짜고 헝가리의 민중가요를 소리높여 부르고 (영화의 배경인 1947년에 헝가리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졌던 노래라고 한다) 당당한 태도로 숲길과 강기슭을 질주한다.그들은 경찰 트럭을 세우기까지 하며 위세를 과시한다.

 

 

 

이어 그들은 신부들이 운영하는 카톨릭 계통의 학교로 쳐들어간다.2차대전 이후의 사회주의 혁명의 열기가 스크린 바깥으로 쏟아진다.학생들을 모조리 광장으로 소집하고 선생님들인 신부들을 한 곳으로 몰아세운다.대학생인민위원회 소속이라 신분을 밝힌 그들은 학생들에게 토론을 제의한다.물론 혁명을 위한 토론이며 인구 3분의 2가 카톨릭 신자였던 헝가리에서,교회를 향한 선전포고 중 하나로 느껴진다.그런데 대학생들은 가만히 서서 연설하는 것이 아니다.팔짱을 끼고 다른 학생들을 몰아붙이기도 하고 원을 그려 돌며 민중가요를 열창하기도 한다.카메라 양 어깨 사이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온 학생들이 합류했다가 또 흩어지고 대열을 이룬 학생들과 소환당한 학생들 사이에 의도적인 구도의 대결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치 무대 위의 강렬한 현대무용을 보는 듯 하다.화면은 젊은 학생들의 생동하는 에너지로 꽉 들어차고 어느 곳 하나 빈 구석 없이 완전히 메워져 있다.잠시도 한 곳에 정지하는 일이 없다.혁명 과정 자체의 본질 자체가 그렇다는 듯,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동선이 수시로 바뀌고 그럴 때마다 더 많은 군중들이 또한번 물결처럼 움직여서 새로운 형태의 동선을 연출한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교함은 열기로 가득 차 있고 광장으로 소환당한 학생들을 향한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소환당한 학생들이 토론에 응하지 않고,어떤 학생들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이 학교라는 짧은 공간 내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등 혁명 특유의 혼란상이 벌어지자,대학생들의 리더가 탄핵당한다.너무 온건하고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다.그리고 학생들 사이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두 명의 과격파 여대생이다.여학생들은 신부들에게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선택을 강요하고 신부복을 벗겨 버린다.인민재판식의 장면들이 지속되고 배신자들이 속출한다.강렬한 열정이 예상 외의 공포로 변신하고 대학생들의 옛 리더와 학교의 주임신부는 위기에 처한다.(그리고 그들은 속절 없이 실권을 잃는다)

 

양 진영 사이에 끼인 그들은 온건파 지식인들의 어쩔 수 없는 퇴조를 얘기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그러나 과격파 여학생들 역시 탄핵당한다.과거 혁명조직에 몸담았던 경찰의 책임자와 더 상급의 권력기관인 조직이 나타나서 옛 리더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듯 여학생들의 권력을 빼앗는다.

 

얘기들은 빠르게 진행되고 권력의 부침이 숨가쁘게 진행되지만 인물들의 열정적인 움직임이 멈추지는 않는다.다만 힘을 잃은 사람들을 향한 카메라의 롱 테이크가 - 탄핵당한 리더들은 헝가리의 산과 언덕을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을 의지한 채 쓸쓸하게 걸어내려온다.이 장면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헝가리란 나라 자체가 영화라는 듯 텅 빈 풍광 아래 지속된다.미클로쉬 얀초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연과 인물의 육체를 그의 영화 안에 녹여 넣는다.장면 하나 하나를 상황 하나 하나에 일치시켜서 관객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영화는 결국 권력기관들에 의한 대학생들의 퇴조로 끝이 난다.관객은 결국 누가 승리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결말의 기운은 쓸쓸하다.

 

이 영화는 1947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1968년에 만들어진 영화다.1947년은 2차대전 이후 헝가리 안에 공산혁명의 기운이 최고조로 달한 때다.그리고 2년 후 헝가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다.그러나 1956년 헝가리 내부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러시아에 대한 반혁명의 열기가 고조된다.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탈퇴하고 소련의 내정간섭으로부터 독립을 외친다.임레 나지라는 정치가가 전위에 서지만 소련은 헝가리를 좌시하지 않고 침공한다.결국 헝가리의 혁명은 진압되고 숱한 사람들이 숙청되고 헝가리를 탈출한다.

 

미클로슈 얀초가  20년간의 세월을 고스란히 영화 속에 은유했다는 해석은 가능할까? 영화 속 경찰간부가 소련 침공 이후 헝가리에 집권했던 야노쉬 카다르이고 과격파 여학생들을 추방했던 고위 당 간부들 역시 반혁명을 진압했던 세력이라는  추측은 정확한 것일까?

 

결국은 쫓겨나고야 마는 과격파 여학생들은 소련에 대항했던 1956년 당시의 여학생들일까 아니면 신부와 처음에 탄핵당했던 옛 리더가 바로 그 사람들이었을까..미클로슈 얀초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엔딩- 결국 학생들은 헝가리의 자연 속에서 여전히 뛰어 논다-은 그러나 놓지 않은 희망을 위한 것일까,아니면 그의 숨겨진 반소련적인 메세지일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의문들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영화는 막을 내린다.헝가리의 황야가 고풍스런 수도원 건물을 뒤로 하며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듯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나의 첫 전주에서의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