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에 관한 짧은 글들 PART2
7.내가 보았던 것
내가 보았던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정확히 말하자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그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 바람계곡의 공주가 발견했던 그 지하정원의 세계.거기서 날리던 포자들.그 하얀 꽃송이들이 <아바타>속에 재현되고 있었다.<아바타>속 생명의 나무의 씨앗들이 순수한 영혼의 형태로 나타나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때,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씨앗-포자 들을 만지려고 했었다(곧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뻗은 손가락들을 감출 수 밖에 없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 용을 닮은 생물들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격동적인 활강 역시,나우시카 세계 속 날틀들의 활강들을 연상케 했다.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어낸 세계가 기억 속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직격탄처럼 리콜해낸 것이다.그 활강과 비상은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 나오는 떠 있는 산들이 나타나는 세계 속을 날아다녔는데,그 그림들은 또다른 경로를 통해 내 기억 한 자락을 살려냈다.
제임스 카메론이 첨단의 기술을 발견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스크린 속의 세상을 마치 자신의 세상처럼 인지하게 했다는 사실 만큼은 무엇보다 분명해 보였다.그가 확실한 꿈의 세계를 현실감 섞인 오감에 전달하는 방법을,또는 그 길의 일단을 찾아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해 보였다.
8.착란
그러나 그가 취한 이 방법이 시각적인 착란에 기인한다는 사실 역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그는 우리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는 두 눈이라는 광학적 렌즈와 그리고 또 하나의 눈인 3D안경을 통해,또 근본적으로는 시각적인 착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을 통해,우리 각각의 현실감을 창조해냈다.즉 <아바타>의 기술,<아바타>의 현실감은 감각적인 착란-착각에 기초한 것이다.
9.리콜
또한 <아바타>를 보면서 내가 리콜해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는 기억들은 근본적으로 내 두뇌에 내장되었던 기억들이다.<아바타>의 용인 토룩과 나우시카가 타고 다녔던 글라이더,<아바타>의 생명나무씨앗과 나우시카 지하정원의 포자들은,같은 계통에서 기원한 내 두뇌의 내장물들이다.현실화된 시점이 달랐을 뿐이다.즉 아바타는 사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지 않았다.그저 자극했을 뿐이다.아바타의 기술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그 테크놀로지는 시각적 착란에 기인하고 두뇌의 자극을 용이하게 하는 일종의 조합능력이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고 폄하받을 일이 아니지만.
10.엉뚱한 곳
정작 폄하가 가능한 지점은 다소 엉뚱한 곳이다.그것은 '돈'이다.아바타의 화력은 돈에 기초한다.재정적인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 기술은 애초부터 탄생불가능했다.그런데 자본은 또,또다른 자본을 향해서 움직이는 법이다.또다른 자본을 창출하기 위하여 용틀임한다.<아바타> 속 자본은 그 영화의 줄거리 속에서,평화롭게 살아가는 어느 외계행성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돈을 벌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몇몇 양심적인 주인공들이 그러한 자본의 음모를 폭력과 초능력 그리고 우연에 힘입어 막아내긴 하지만,어쨌든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그런데 영화 <아바타>는 흥미롭게도 헐리웃이란 자국의 행성을 떠나 다른 행성으로 잠입해서,그 행성의 스크린들을 모두 다 점령해버린다.약한 행성의 가난한 영화인들이 설 자리는 없어져 버렸다.이주할 곳도 마땅치 않다.그들에겐 제이크 설리가 없고 나비족의 전사도 없는 것이다.
과도한 해석일까?
11.영진위
스스로가 무언가의 아바타인 MB의 수많은 미니미 아바타 중 하나인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를 보자.갖가지 트러블을 양산해내는 것까지 확실한 MB아바타인 영진위의 수장은,과거 영진위가 해왔던 일을 거의 하려 하지 않는다.시네마테크의 부활 따위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왼쪽에 서 있는 영화인들에 대한 사시 증세는 갈수록 심해진다.
나는 지금 영진위의 정치적 입장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정치적 입장과 정책적 방향은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사고방식과 가치관,그리고 조직과 인간을 움직이는 철학적 기초다.그것이 그 조직과 동력의 사업으로 나타난다.
영진위는 최근 40억의 자금을 들여 <아바타> 같은 3D영화를 '진흥'하겠다고 나섰다.7000명의 3D전사들을 양성하겠다고 한다.아마 그것도 일자리 창출인 모양이다.3D는 영화의 미래이며 무엇보다 돈이 되기 때문이란다.(이것은 영진위의 수장이 직접 자기 입으로 한 말인 모양이다) 그들은 이렇게 3D를 진흥하면서 독립영화와 시네마테크의 기초를 파괴한다.재개발 현장의 용역깡패들처럼 말이다.무언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아바타>는 기묘하게도 어떤 사람과 조직의 기본철학을 유도해냈다.그리고 그것은 역시 '돈'이다.물론 제임스 카메론은 돈 따위엔 눈알 하나 꿈쩍하지 않을 사람이다.그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이 되면 돈 문제쯤엔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 법이다.오히려 문제는 이렇게 변방의 천박한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다.<아바타>가 자신의 내러티브를 통해 하는 이야기는,오히려 비도덕적인 자본력에 대한 혐오와 야유이지만,영화 바깥에서는 그 반대방향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무척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평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2.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사실 <아바타>의 내러티브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그리고 감독 제임스 카메론 역시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고,과거에도 그는 그랬었다.<아바타>는 과거의 영화들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부분들을 뽑아내어 슬며시 짜집기를 하고 있는데,그 짜집기 실력이 그렇게 정교한 것도 아니다.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왜? 테크놀로지에 집중해야 하니까.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까.기술과 자본의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내용과 디테일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줄거리들은 정말 수많은 영화들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한다.미국의 수정주의 웨스턴에서부터 심지어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들까지,유럽인들의 남미 침략을 다룬 영화들로부터 SF 판타지 대작까지,그 스펙트럼은 크고도 넓다.롤랑 조페의 1986년 영화 <미션>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폭포와 대자연 원주민들과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늑대와 춤을>과 테렌스 맬릭의 <뉴 월드> 그리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타이거 릴리?
거기에 <쥬라기 공원>과 <지옥의 묵시록> 등등,<아바타>가 연상시키는 영화들의 리스트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좀 지적능력이 떨어져서인지,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혼란스럽고 모호한 상황도 많이 만났었다.가령,과연 나비족이,지구인인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 그들의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난 형태,말하자면 '아바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나비족은 분명히 그들이 '하늘의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지구인의 생김새를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주인공인 지구인 제이크의 그들과 닮은 모습에는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는다.시고니 위버의 나비족 학교가 그런 거부감을 미리부터 없애버렸을까? 아니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람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비족은 지구인의 아바타 변형능력을 자신들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어떤 성향,혹은 곤충이나 벌레들의 탈피 같은 자연적인 성향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변신능력에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은 확실한 대인배다.
13.접속 그리고 변신
반면 접속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수많은 교감들은 확실히 특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능력이다.(물론 이것도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유전자와 전기적 접속을 통해 나비족으로 변신한다.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변신에 대한 욕망-신화의 시대로부터 나타나는- 을 표현하지만,그것은 그냥 외부적인 변신이다.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의 몸을 빌려 세상을 걷게 되지만 그의 내면적인 자아는 그대로 유지된다.정말로 변한 것은 아니다.심지어 변화 후의 몸 역시 그의 원래 모양- 특히 얼굴- 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변이 역시 '접속'이 끊기면 거기서 그대로 끝난다.존재의 변이는 오직 전기적 접속과 전자적 신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이것은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찬양하는 셈이 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인가?
14.또 하나의 접속
또 하나의 접속은 나비족의 촉수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말 같기도 하고 켄타우로스 같기도 한 장신의 그 생물들은 자신의 긴 포니테일 끝에 달린 촉수로 용들을 비롯한 자연과 교감한다.그들은 특별한 기술의 도움 없이,오직 본능과 정서적 교감에서 우러나오는 신호들로 용들을 다루고 하늘을 미끄러져내리는 듯 보인다.어쩐지 이 영화는 이러한 형태의 능력을 과학기술의 대척점에 선 대안으로 제시하는 듯도 보인다.영화의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그런 생각을 더욱 부추긴다.
현실성 보다는 미학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런 종류의 접속은 너무나 환상적이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무력하게 설계되었다.3D영화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고 이미 이룩된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질 앞으로의 속편들에서 이러한 접속능력들이 어떻게 진화할지 나는 궁금하다.
이 영화에 나타나는 이런 다양한 접속들은,(인간-나비족 인간-기계-무기 나비족-자연) 이 시리즈의 진정한 비밀병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짧은 글들을 마치는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