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영화1- <더 로드>
아바타의 그 현란함과 첨단의 테크놀로지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와 피부를 현혹하고 또 한번 제임스 카메론이 자신을 왕이라 칭하려 하며 심지어 영화의 대사 속에서 우리를 응시하기까지할 때, (<아바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를 향해 I see You라고 말한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더 로드>는 <아바타>와는 완연히 다른 세계,모노톤으로 가득한 황량한 종말의 풍경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더 로드>속 세상의 종말은 그냥 글자 그대로의 현상이고 현실이다.이 종말은 우리에게 그 역사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 이유를 설정하지도 않는다.이 불친절한 영화 속 종말의 세상은 우리에게,바로 종말이란 그런 것이라고,전쟁도 환경적 재앙도 외계인의 습격도 (수많은 영화들이 종말의 원인으로 제시해왔던) 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얘기한다.종말은 태초부터 쭉 천연덕스럽게 진행되어 왔으며 지금 편안한 극장 의자에 앉아 <더 로드>의 영상을 지켜보는 당신들 바로 옆에,바로 우리의 근거리에 무심한 종말들이 입을 벌리고 누워 있노라고 얘기한다.
겨울 어느 날,극장 바깥엔 눈들이 차곡차곡 쌓여 무릎관절의 높이를 향해 치닫고,거리의 공기입자가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처럼 뺨의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 상황인데도,극장 안의 빵빵한 난방 장치 때문에 대조적으로 솟아오른 온기로 오히려 당황스러워진 관객들의 눈 앞에 이 서늘한 현실감각으로서의 종말은, 회색톤의 숲들과 하늘 불타버린 건물과 나무들 버려진 자동차들,그리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과 칼날을 휘둘러대는 카니발리즘의 잔학함으로 오히려 차분하게 제시된다.
<아바타>, 겨울,잔인한 잔혹함,세계의 종말,그리고 따뜻한 극장,관객들을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극명한 부조화의 예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더 로드>는 그 어처구니없이 부조리해진 세상 한구석에서,여전히 인생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아들의 시선과,선과 악의 기준마저 불분명해진 지옥도 안에서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거칠고 막막한 생존에의 분투를 보여준다.
아들은 자신들이 희망을 상징하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희망의 상징과 정착지가 될 막연한 바다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아들은 생존의 문제 이전에,인간적인 동정과 배려의 심정을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별해야 할 정의의 기준을 상실하지 않았다.그러나 아빠는 공적인 정의와 개인적인 윤리 이전에 생존의 문제를 더 고민하고 폭력과 살상을 통해서라도 그들 스스로의 생존을 지켜내야 한다고 믿는다.
인류의 고전적인 문제- 생존의 문제 앞에서도 윤리적으로 지켜져야 할 선악과 정의의 감정과 실제행동은 유지될 수 있는가- 가 이 영화 안에서도 여지없이 질문되는 것이다.아들 역의 코디 스미트 맥피는 종말적 상황 아래 놓인 아이답지 않게 깨끗한 피부와 맑은 눈동자를 가졌으며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이의 분장은 다분히 고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제는 서서히 경지에 오르기 시작하는 비고 모르텐슨이 연기하는 아빠는 그런 아들을 향한 복합적인 심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강인하게 마지막 삶들을 꾸려나간다.그러나 그는 종종 아내인 테를리즈 샤론으로 상징되는 과거에의 플래시 백의 반복과 더불어 수시로 회한에 잠긴다.아들과는 달리,그의 시간은 여전히 종말 이전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가 금방 얘기한 이런 문제들- 선악이라는 윤리적 문제 그것과 배치되는 생존의 문제-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종말의 풍경을 스크린 위로 재현해내야 한다는 시각적 테마에 조금 더 집중한 나머지,형이상학적인 테마의 비중은 약간 축소된 느낌들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그러나 이것은 보는 관객들의 감성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이 영화가 맞닥뜨려야했을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그리고 그의 <더 로드>라는 원작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작품 편수가 지금의 두 배였다면 ,미래의 클래식의 레벨에 오르게 될 것이 당연할 코맥 매카시 책의 영화화는 사실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험하고 긴 여정 속에서 펼쳐지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다.출구는 그 어느 곳에도 없고 상황은 절망적이며 등장인물들은 고통의 극한을 오간다.
코맥 매카시는 이 단순한 스토리 내부에,삶의 비의를 담은 명상적 문장들과 쉽게 시각화하기 힘든 이성적 메세지들을 촘촘하게 박아놓는다.빌리 밥 손튼이 영화화한 코맥 매카시 원작의 <모두가 예쁜 말들>이 결론적으로 실패했던 것은 시각화된 영상과 내부적 매세지 사이에서 그 균형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반면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로서,이 영화의 원작소설에서 매카시는 예의 그 장중하면서도 조용한 문체를 버리고 매우 하드 보일드한 짧고 숨막히는 문장들을 구사했었다.코언 형제에게 행운이 따랐다기 보다는 그들이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국경 삼부작>을 비롯한 여러 개의 매카시 소설들이 영화화되고 있는 가운데,그 작업들의 성패 여부는 내게 소설 못지 않은 관심사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식의 집중화된 영상을 제시하지 않고서도,코맥 매카시 특유의 깊은 흐름과 울림을 스크린 위로 재현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소설과 영화라는 두가지 예술 쟝르의 앞날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
몇 가지 남겨놓아야 할 질문과 가정들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첫번째,<더 로드>의 종말이후의 세상이 다른 종류의 알레고리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번째.닉 케이브가 아닌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스크린 위로 흘렀다면 어떤 효과가 나타났을까?
세번째,인류에게 바다란 무엇인가,바다는 세상의 그 모든 종말을 넘어설 수 있는가?
네번째.아들은 영화 말미에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이것을 최후의 희망으로 보아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