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스틸 라이프<지아쟝커 2006> PART2

폴사이먼 2009. 2. 3. 16:42

영화는 이제 두번째 주인공을 향하여 나아간다.한산밍이 건물 옥상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멀리 산 너머에서 UFO가 떠올라 날아가기 시작한다.

 

 

한산밍은 고개를 돌려버렸으므로 날아가는 비행물체를 보지 못하지만,새로이 등장한 여주인공 셴홍은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그 UFO를 목격한다.하지만 셴홍은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호들갑을 떨거나 눈을 크게 뜨지도 않는다.무표정이다.그 곳 싼샤에서는 그렇게 비일상적인 일도 당연히 일어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셴홍 역시 한산밍처럼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떠나버린 남편을 찾아나선 여인 셴홍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셴홍 또한 한산밍처럼 섬서성 출신이다.그녀의 직업은 간호사이며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고,아이가 있는 지는 불분명하다.그녀의 남편은 싼샤댐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겠다며 그녀를 떠났고,지난 2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핸드폰은 수신이 안되고 편지도 전화 연락도 없다.

 

셴홍 역시 한산밍과 비슷한 여정을 겪는다.한산밍이 싼샤에 도착했을 때 처음 찾아간 곳이 관공서였고,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정착금 정책을 항의하는 싼샤의 강제 이주민들이었던 것처럼,셴홍이 남편의 회사에 찾아갔을 때 만나는 사람들은 작업 중 부상을 당했음에도 회사로부터 제대로 치료비를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또 한산밍처럼 셴홍 역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어쩌면 사실 ,남편과 아내를 애타게 찾으려 하는 그들의 눈에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이 제대로 들어오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또 셴홍 역시 한산밍처럼 남편의 소재를 알아내는 데 난항을 겪는다.어렵사리 찾아간 남편의 옛 직장 어디에서도 남편의 소재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다만,남편이 굉장히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만 계속 듣게 된다.하지만 셴홍은 남편의 직장에서 찾아가지 않은 남편의 소지품들을 발견한다.그 소지품 속에는 남편의 차 꾸러미가 끼어 있다.그 때 예의 자막이 화면 오른쪽 화단에 떠오른다.

 

 

 

茶 차.중국인의 필수 행복조건이라는 차.남편은 자신의 차마저,일상적인 소품 마저,심지어는 신분증 마저 버리고 떠난 것이다.

 

 

허탈하게 철거현장들을 둘러보는 셴홍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소녀는 외지인으로 보이는 셴홍에게,셴홍의 하녀가 되겠다며 자신을 데리고 떠나달라며 하소연한다.이 소녀는 한산밍이 만난 마이크의 대응인 것처럼 보인다.이렇게 이곳은 모두들 떠나버리려 하는 도시인 것이다.셴홍은 소녀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목이 타는지 연거푸 물을 마시며 목말라 한다.

 

그녀가 배를 타고 물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한산밍의 점심 식사 때 노래를 불렀던 소년이 또다시 등장해서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또 '워 아이 니'다.장강의 뮤즈라도 되는 양,소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셴홍의 여정은 이렇게 한산밍의 그것과 닮아 있다.그러나 그들의 여정이 전혀 똑같은 것은 아니다.한산밍 쪽이 훨씬 더 현실에 잘 적응한다.그는 곧 일자리를 찾고 가족찾기를 지속하며 그가 바라보는 것은 주로 육체적 노동들의 현장인데 반해,셴홍이 바라보는 것은 주로 그 지역의 쓸쓸한 풍경들,부서지고 떨려져 나가는 종말적 풍경들 뿐이다.그녀는 이 현실에서 부유하는 듯 보이며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의 출신과 배경 때문인지도 모른다.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셴홍과 광산노동자인 한산밍의 차이,도시에서 살아가는 셴홍과 광산에서 살아가는 한산밍의 차이.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일을 하는 한산밍과 그렇지 않은 셴홍의 가족관의 차이.

 

셴홍은 이번엔 남편의 군대동기인 친구를 찾아간다.친구 역을 하는 배우는 놀랍게도 ,지아쟝커의 충격적인 데뷔작 <소무>에서 중국 자본주의 초기의 영락한 소매치기 역을 멋지게 소화했던 배우다.(불행히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사라졌던 그 배우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싼샤댐 건설지역에서 셴홍이나 한산밍이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일을 하고 있다.모두들 깨고 부수고 건설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 이 지역에서,친구 왕동밍은 곧 수몰될 이곳에서 출토된 고대의 유물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사라지려는 것을 다시 찾고 복원하는 '사람이 셴홍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왕동밍이라고 해서 셴홍의 남편을 찾아낼 묘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남편이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꿔버리고서 셴홍에게 새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또 왕동밍의 도움으로 찾아간 남편의 새 회사에서,남편의 그 회사의 여자 사장과 불륜 관계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는사실만을 알아낼 뿐이다.

 

그 뼈아픈 사실들을 알아챌 때,셴홍 뒷쪽의 전선의 누전으로 스파크가 일어나며 불빛이 번쩍인다.

 

 

마치 셴홍 두뇌 내부의 어떤 회로가 고장을 일으켜 일순간 정지해버린 듯한 상황을 표현하는 한 장면 같다.이 시간의 정지는 셴홍의 남편찾기에 도움을 주는 왕동밍의 집안에서도 감지된다.왕동밍의 책상위엔 수평으로 줄이 하나 걸려 있는데,그 줄엔 온통 정지된 시계들이 걸려 있다.

 

카메라는 손목시계와 회중시계들이 나란히 그 곳에 걸린 채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모습을 따라가다가,셴홍과 왕동밍이 이야기를 나누는 베란다로 나아간다.베란다 바깥 쪽엔 잊을 수 없이 기괴한 모습을 한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어디선가 떨어져내려와 갑자기 뿌리를 내린 것 같은 이상한 건물이 대화를 나누는 셴홍과 왕동밍의 저 너머에 보이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셴홍의 눈에 저 건물이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우린 알 수 없다.셴홍이 바깥을 내다 보며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 건물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대화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셴홍은 동밍에게,자신과 남편의 관계를 담담히 얘기한다.지금도 그와의 연락이 끊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과거에 같이 살고 있을 때에도 남편과 그녀와의 사이엔 내밀하고 진정한 대화가 거의 오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왕동밍에게 얘기한다.그들 뒤에 보이는 저 위태로운 건물이 이해될 듯도 하다.

 

그날밤,셴홍은 밤을 지샌다.낮엔 목이 마른지 연신 물을 마시던 그녀는,밤엔 견딜 수 없는 더위 -그러나 방 안의 온도가 높아서 더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와 답답함에 ,벽에 달려 있는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쐬며 밤을 보낸다.

 

이윽고 그녀는 아까의 그 베란다 앞에 선다.그녀가 자신의 옷을 빨랫줄에 매달고 돌아서는 순간,건너편에 여전히 서 있던 '르네 마그리트 빌딩'이 갑자기 우주선처럼 로켓트를 분사하며 새벽의 어스름을 뚫고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그것은 마치 셴홍과 남편 구오빈 사이의 관계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복원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예감이자,셴홍 자신의 어쩔 수 없는 깨달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싼샤댐 지역에서 살아가는 중국 인민들이 유지하고 있는 불안한 관계들의 표상인 것처럼 비추어지기도 한다.

 

다음날 셴홍은 결국 남편을 만난다.셴홍이 그의 남편에게 분노를 터뜨리거나 추궁과 힐난을 퍼부어대지 않는 이유는 그 날 새벽 그녀의 마음이 이미 정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셴홍은 오히려 약간의 변명을 시작하려는 남편에게,자신에겐 남자가 생겼으며 그 남자와 샹하이로 떠나버리기로 했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셴홍과 남편의 라스트 댄스다)

 

그리고 그녀는 간단하게 싼샤를 떠난다.그녀는 유람선에 올라 타,이태백의 시를 읊는 관광 가이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강을 거슬러 샹하이로 간다.곧 사라지게 될 잊을 수 없는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의 뒷모습이 보이다가,영화의 카메라는 셴홍이 탄 선실의 텔레비젼 화면을 비춘다.화면엔 싼샤댐이 건립되는 과정과 그 당위성을 얘기하는 홍보영화가 나오고 있다.

 

쑨원과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가며,이 건설사업이야말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숙원사업이었으며,이 댐이 중원의 역사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투의 나레이션이 들려 온다.

 

셴홍은 여전히 물을 마시고 있으며 선실 바깥을 돌아보는 그녀의 눈매 역시 변하지 않았다.이렇게 40분간의 셴홍의 여행이 끝나자,다시 영화의 이야기는 한산밍에게로 돌아간다.이번에도 자막이 뜬다.

糖 toffee 사탕

 

한산밍은 산 위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과 셴홍이 타고 가는 여객선을 지켜 본다.이렇게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영원히 스쳐 지나간다.

 

한산밍의 마지막 이야기는 결국 그가 아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아내는 오빠의 빚을 갚기 위해 또 팔려와 있었다.아내를 산 배의 주인은 한산밍에게 3만 위안을 요구한다.아내의 몸값은 16년 새 10배로 뛴 것이다.한산밍은 그에게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산밍은 아내와 철거직전의 어느 건물에서 얘기를 나눈다.둘 사이에도 셴홍과 그녀의 남편 구오빈처럼 특별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그리고 그들이 쪼그리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건물의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마치 한산밍과 그의 아내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위태롭다.그런 그들이 나누어 먹는 것은 사탕이다.저 위 스틸 사진 속 산밍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바로 흰 토끼 사탕이다.그것은 그들의 한없이 가엾은 관계에도 약간의 희망이 남아있다는 암시처럼 보인다.

 

그들이 사탕을 나누어 먹는 그 순간 저 멀리 커다란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이 건물의 무너짐은 셴홍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우주로 발사되는 건물의 에피소드와 거의 정확하게 조응되지만,두 사람의 다음 행동은 정반대의 울림을 갖는다.남편을 정리해버리는 셴홍과는 달리 ,한산밍은 놀란 아내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안는 것이다.

 

그러나 한산밍 역시 셴홍처럼 싼샤를 떠나야 한다.그는 그가 떠나 왔던 섬서의 광산촌으로 돌아가기로 한다.그래야 아내를 도로 찾아오는 데에 필요한 돈 3만 위안을 빨리 벌 수 있는 것이다.매일매일 사람이 죽고 다치는 광산촌에서의 수입이 이 곳 싼샤댐 철거 현장에서의 그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철거반의 동료들 역시 그를 따라 나서기로 한다.어차피 모두들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다.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짐을 챙겨 싼샤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관객은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엔딩 씬을 만나게 된다.한산밍과 동료들이 옷과 이불 보따리를 들고 황량한 철거 현장을 내려오는 도중,문득 돌아본 한산밍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광경은,부서지는 건물들 사이에서 위험하게 외줄을 타는 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위태로움,그 위험함,자칫 줄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은 현대 중국 인민의 표상이자 ,한산밍 자신의 운명이다.

 

한산밍은 잠시 눈을 돌렸다가 다시금 허공에서 외줄을 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다.그리고는 또다시 걸음을 재촉한다.그리고는 엔딩 크레딧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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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이제야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스포일러'를 쓰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