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나를 스쳐가는 2007년의 영화들.

폴사이먼 2007. 12. 27. 00:12

바빴던 2007년이 지나간다.도대체 무얼 하고 지냈는지 돌아보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이명박씨가 대통령 당선자와 특검의 피의자 (이거 맞나?) 라는 영화의 더블 캐릭터로 캐스팅 되고 은별이는 곧 네 살이 된다.

 

삶이 아주 변한 것은 아니지만,지금의 내 삶의 양태는 무언가 물 밑에서 변동을 일으키는 듯한 방법으로 진행된다.마치 조만간 어떤 종류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 같은 부글거림이 마음 속에 존재한다.그런 형태의 불만과 소화불량증은 언젠가 나에게 어떤 길들을 제시할 것이고 ,아마 난 근본적이지 않은 타입의 대답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러다가도 팍 돌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문제는 내가 돈을 버는 방식,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방식,내가 가족과 함께 세상을 항해하는 그 '방식'에 있기 때문에,어떤 때는 신중할 수 밖에 없고,어떤 때는 과감하지 않을 수 없으며,어떤 땐 포기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아마 내가 워낙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찌 되었든 희한한 2007년이 지나가고 ,나는 곧 책상 위의 캘린더를 교체하게 될 것이다.

벌인 일을 수습하고 벌려진 일을 마무리하고 막아내느라 정상 이상으로 허덕였기 때문에,내 개인적인 시간들이 대폭 축소되어 버렸다.불만을 느낄 수 조차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리뷰를 써야 할 영화들은 여전히 밀리고 있고,남아나는 짜투리 시간에 영화들을 보느라 또 다른 의미에서 허덕이고 있다.

 

1.꼭 써야 했던 영화들.

 

이 있었다.지금 이 포스팅에 그 영화들을 명시해 놓고 나중에라도 쓰지 않으면,이 가엾은 영화들은 아마도 머리 속 아랫 부분의 음습한 늪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이것이 그 빈사 직전의 리스트다.

 

  챠이 밍 량 감독의 흔들리는 구름

   대런 애르노프스키의 레퀴엠

   홍콩 영화들 (방축,대자객,상성,영웅본색)

   중국 영화들 (소무 ,그리고 스틸 라이프)

   스미스씨,워싱턴 가다

   블루스 브라더스

   죤 포드 감독의 역마차

   앵무새 죽이기

 

2.그리고 지나가는 영화들

내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안 쓰면 그만이다.가끔씩은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고 우습게도 느껴지기까지 한다.차라리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남는 일인지도 모르고 ,내 삶의 위태로운 부분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

 

뭐,그래도 이렇게 한밤중에 앉아서 쓰고 있는 걸 보면,어이없지만 아무래도 이게 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잘 모르겠다.(간절하게 맥주병이 생각난다.5층 냉장고에 있는..)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몇 몇 영화들에 대한 글을 쓰려 한다.이런 기묘한 방식의 정리 역시,아마 내가 2007년을 정리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3.우선 미스터 빈.

 

<미스터 빈,휴가를 가다>의 마지막 장면이다.다른 걸 다 떠나서 난 이 영화의 마지막 해피엔딩이 너무 좋았다.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예를 들어 돈이나 뭐,이런 것 말이다_- 우리의 미스터 빈은 그저 리비에라 해변에 저렇게 서서 양 손을 활짝 펼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저 행복한 마무리야말로 미스터 빈 시리즈의 진짜 묘미다.

 

옥스포드 출신의 로완 애트킨슨,많이 늙었다.그가 펼치는 거침없는 몸개그 역시 약간은 불안했다.그의 주름들을 쳐다보며,과거 어느 한 때 텔레비젼에서 그를 쳐다보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던 생각이 났다.어떤 추억이 생각날 듯도 했다.그의 몸개그는 언제나 이상하고 조용한 정적과 동반되는 것이어서,웃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빨리 제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워킹 타이틀이 제작한 이 영화는 그런 정적과는 거리가 멀었다.그게 텔레비젼과 스크린의 차이인지도 몰랐다.뒤바뀐 차이 말이다..

 

윌렘 데포도 나왔었다.플래툰의 자유주의자..데포..그도 늙었다..

 

 

그의 이 장면은 헬리콥터,그리고 모짜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4.제이슨 본의 정적.

 

 

<본 얼티메이텀>의 제이슨 본 역시 정적에 쌓여있다.정적 속에 놓인 영웅이랄까..

개인적 비극이 영웅의 풍모에 주춧돌을 놓고,정체성의 문제와 실종자로서의 외양이 영웅의 매력에 기름을 부었다.그의 액션 역시 정적과 절제가 기본이었다.그의 주먹은 날카로운 예각을 그리고 있었는데,실제로는 한결같은 잔인함을 가지고 있었다.이 영화는 올 해 최고의 액션 영화이다.

 

그러나 좀 어지러웠다.모로코로,런던으로,마드리드로 돌아다니는 제이슨 본을 따라잡기가 말이다..

 

5.예민한 마리 앙뜨와네뜨

 

근본적인 예민함은 바로 내면의 절대적인 정적 속에서 솟아나온다.이 영화 <마리 앙뜨와네뜨>는 예민한 감독이 만들고 예민한 여배우가 연기하는 영화이다.겉만 보면 번지르르하기만 한 것이 장난처럼 보이고,분명히 존재했던 역사에 대해서 조차 약간의 왜곡을 시도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내게 이 영화는 참으로 예민한 영화였다.

 

근거를 대보라고?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커스틴 던스트의 어떤 한 순간의 동작,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하는 어느 한 순간의 미쟝센과 빛의 조절이 나로 하여금 그런 근거없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었다.

그리고 커스틴 던스트는 어쩐지 아주 옛시절의 헐리웃 미인들 -작은 키에 아담한 몸매의 그리고 무엇보다 금발머리인 - 을 재현하는 듯 보였다.

아,참 이 영화엔 또 하나의 예민한 배우가  출현하고 있었다.아시아 아르젠토..바로 이 여배우다.

약간은 근거 없이 폄하당하고 있는 배우다..

 

6.근거 있는 로버트 앨트먼.<플레이어>

 

단순히 한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자,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영화에 출연한다.그 감독의 이름은 로버트 앨트만이다.

 

잠깐,일 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그에게 명복을 보내자.

그의 영화가 언제나 걸작인 것은 아니다.걸작도 있고 범작도 있고 또 졸작도 있다.어떤 영화는 정말 별로이다..앨트먼의 영화 <플레이어>는 걸작은 아니지만 범작 이상의 영화이다.평범한 외모의 팀 로빈스가 왜 명배우로 올라설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그의 맑은 눈빛은 어떤 때 참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앨트먼은 이 영화에서 헐리웃 창작자들의 일상과 숨은 고뇌를,'만드는 자'들의 어려움과 자기 모순을 스릴러의 외양에 담아 던져 놓는다.나로서는 한 때 너무나 좋아했던 여배우 그레타 스카치가 나와서 좋았다.

 

7.만드는 자의 고뇌

 

만드는 자 -예술가,창작자-에 대한 영화이다.실존했던 미국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에 대한 영화로서 밀로스 포먼이 감독하고,역시 형편없이 폄하되고 있는 배우 짐 캐리가 나왔다.

 

짐 캐리는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열망하며,독특하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어떤 특별함을 추구하는 운명을 타고난 한 코미디언의 일대기를,그의 모든 개인기를 동원하여 재현한다.

특별함은 그러나 댓가를 요구한다.정신은 부단하게 양쪽의 극단을 오가고,현실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끊임없는 신경증과 불안이 창작자의 머리를 두드려댄다.심지어 예술은 예술가의 목숨까지도 마치 당연한 전당물을 앗아가는 전당포 노파처럼 순식간에 앗아가버린다.

 

 

 

8.독특함을 추구하는 또다른 방식.<트로미오와 쥴리엣>

 

 독특함을 추구하는 또다른 방식은 ,극단으로부터 더 멀리 나아가기,원작을 한껏 비틀어서 혐오감 유발시키기,그리고 이어지는 구토의 토사물로부터 자기 자신의 내장 속에 들어있는 진실한 물질들을 응시하기일 수도 있다.

 

독립영화그룹 <트로마 패밀리>가 몇십 년 동안이나 해 오던 작업이 바로 이런 것이다.<트로미오와 쥴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을 뒤집어 엎어버린 것으로서,독설과 변태,그리고 광란이 난무한다.더 구체적으로는 사지절단과 근친상간이 그 방법이며,호러와 코미디 슬래셔 무비를 한꺼번에 뒤섞어서 그 맛을 모르게 한다.

 

레즈비언인 쥴리엣과 새디스트인 그녀의 아버지,흑인에 알콜중독자인 로미오의 아버지,그리고 포르노 영화들..이루 헤아릴 수 없는 더러운 무기들을 장착하고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을 겨냥한다.인생의 다른 면을 조명하며 마구 키득거린다.

 

이런 식의 <춘향전>을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춘향이와 향단이는 레즈비언 파트너였고,이몽룡은 근친성애자에다가 '그네'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성향이 있고,변학도는 십대 여성을 고문해야 성적인 만족을 느끼는 변태라면..말이다..그리고 그런 영화가 나온다면 말이다.뭐..돌 맞겠지..

 

9.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영화들,또 쉬레기들..

정리해야 할 영화가 더 있으나,내일 모레로 넘겨야 할 것 같다.체력이 다 되었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게 오늘 밤 얘기해야 할 영화가 몇 개 있다.제목은 생각나지만,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분명히 2007년에 보기는 했으나 아마 완전히 잊혀지게 될 영화들이다.

 

그런 영화들의 리스트들이다.

 - 88분.- ; 거인 알 파치노가 나왔음에도,나는 이 영화를 잊게 될 것이다.

 - 카오스; 벌써 잊었다.

 - 1408 ; 갑자기 주연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빠른 망각의 전조증상이다.

 - 고스트라이더; 쉬레기다..